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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마가복음4:11~12)에대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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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자유인 ( 2005-02-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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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항상 힘써 도움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궁금한것이 있어서 도움을 얻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11.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
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가복음4:11~1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리라" (디모데전서2:4)
하나님의 뜻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깨달아 돌이켜 죄사함을 얻어 천국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마가복음4:11~12) 말씀은 그런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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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5-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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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도 함부로 넘기지 않는 자세가 아름답습니다.
지적하신 말씀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 속하는 말씀으로 (사 6:9~10)의 인용입니다.
또 님께서 이해하시는 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합니다.
다만 여기서 이해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너희]라고 칭하신 이인칭(二人稱)과 [저희]라고 이름하시는 삼인칭(三人稱)의 차이입니다.
신약성경 특히 4복음서에서 늘 이 두 인칭 대명사(代名詞- pronoun)는 구원자와 구원 받지 못할 자의 간격으로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전자는 믿고 순종하는 자들로 그리고 후자는 불신하고 주님과 복음을 거부하는 자를 지칭하십니다.
성경에서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과 순종은 구원을 받아드리는 복된 자세로 칭송되는 대신에 완악하고 거역하고 교만한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언제나 심판이 선언되는 대상입니다.
또 순종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의 사람에게는 상대의 말이 잘 이해되고 수용이 되지만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이렇게 비유까지 사용하여 풀어 증거 해 줘도 더욱 완악해 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어려움이 없지만 원수간의 대화는 어떤 좋은 말도 곡해(曲解)하여 잘 못 이해 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본문의 인용 내용은 설득되고 이해 되는 것 조차 경계하는 과거 이스라엘의 완악한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처럼 주님의 가르치시는 교훈에 자신들이 설득되고 변화 될까 봐 경계하는 구제 불능의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안타까운 말씀이십니다.
다음의 인용문을 참고 하십시오.
(11)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12)그것은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공동번역개정-대한 성서공회)
주님의 평강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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