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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십일조, 안식년 제도…
  질문 : 이상훈 ( 2005-04-27 )   
1. 십일조를 할때 세전으로 하나요? 세후로 하나요?


평신도라서 드리는 질문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1)십일조 : [평신도 수준에서의 십일조에 대한 이해]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십일조에 대해서 이해한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솔직히 세전세후라는 것도 궁금하고 제가 생각한 바가 맞는지도 좀 궁급합니다.

[가정1 : 십일조는 전문분야를 나눔으로써 상호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분업에 기초하며, 역으로는 타락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일단 하나님의 백성인 레위인, 오늘날로 말하면 전도사님과 목사님 즉 신학생들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라는 의미로 경제적 행위를 배제당한것 같다는 생각이 들구요. 어떤의미에서 교만할수 없었고 우월적 지위에 있지는 못한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꽃과 열매를 함께 취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성도가 저항의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 십일조?]
공동체내에서 경제적인 행위는 일반 성도들에게 맡겨졌는데 개인적인 의미에서는 일반 목회자가 경제권이 없기 때문에 성도들과의 관계속에서 하나님과 보다 특별한위치에 있지만 또한 함부로 성도들을 휘두르거나 할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고 서로의 공동체로서 각기 다른 직분을 감당함으로 서로에게 유익이 되게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도가 레위인들에게 저항하는 방법: 십일조 거부]
왜냐하면 합당한 영적인 통치권이 없다면 일반성도들은 경제권에 대한 지원을 하는것을 그만두는 방식으로 반응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성도와 목회자직분의 사람들과의 상호신뢰가 중요하고 서로의 의무를 다하는것이 전문분야에 발달을 통한 양자의 이득이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양자의 관계중에서 문제가 발생할경우 어떻게 처신하냐에 따라 큰 문제가 생길수도 있었을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적인 부분에서만 계속적인 연구를 감당하여 성도의 전체적인 영적인 성숙에 대해서 책임질수 있도록 기능을 이원화하여 몸되도록 하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즉 하나님의 이와같이 나누시도록 고안하신 의도는 서로 몸된 일을 이루기 위함이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제사장직분의 타락과 경제적 권한]
일반적인 유대인의 타락은 영적인 부분에서의 권력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부분에서 자립할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냄으로써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되면서 타락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구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한 잘못된 상태]
그렇지만 레위인과 성도들의 관계가 악화되자, 십일조는 감소되었고, 성도들의 영적인 수준도 레위인이 자립을 위해 경제영역에 참여하게 되면서 나뻐지게 되었던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십일조에 대한 잘못된 법을 고쳤던 사례]
이에 대한 해소방안은 리더쉽과 이에 대해 안타깝게 여겼던 지도자등이 기존의 십일조에 대해 재정을 집행하고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함에 있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십일조에 대한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함]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셨던 십일조에 대한 온전한 기준이라고 함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의 현대적 적용?]
이를테면 세전으로 할것인지 세후로 할것인지 알고 싶구요.
유대인의 전승의 경우, 100분의 50을 하는 사람을 온전한 사람이었다고도 하는데 그런게 사실인지 궁금하구요.


[십일조에 대한 항목의 이해?]
23.4%가 온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일 그것을 지키려면 통장을 분별관리하거나 하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축제의 십일조의 경우 어떤식으로 관리되었는지 궁금하구요.


구제의 십일조등에 있어서 부모님에 대한 지원등이 포함되는지도 알고 싶구요. 항목별내역이 정리되어 있다면 내용이 궁금합니다.




(2) 안식년에 대한 질문 (평신도의 수준)

[율법은 거룩한것이며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음.]

복음의 중요성을 해치고 율법주의자가 될지 두려워하는 맘으로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부분에 대하여 마음의 중심과 절차가 모두 중요한것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까닭은 로마서와 피터 드러커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것인데, 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율법에 대한 적용에 대하여 중립을 잡으면서 말하기를,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것에 대한 것을 의무라고 생각했던것을 사도바울이 권리라고 재해석함으로써 문제를 풀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요즘 세상에서 안식년을 평신도가 지킨다고 말한다면, 일종의 율법이 아니냐라고 말할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최근의 직업적 바탕이 재교육을 어느시점에서 받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어려워지게 되었고, 실제적으로 군대에서의 수준유지와 교육자로서의 수준유지를 위하여 재충전하는것이 사회적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면서 교수나 신학자등으로부터 시작된 안식년의 개념이 조금씩 보편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전한 안식년을 지킨다는 도전을 받게 되면 그 기준일에 대해서도 좀 곤란하게 된다는 생각을 해보는데 만일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자 다른기준에서 안식년을 하게 된다면 혼란이 되고 다른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재는 어떤 기준없이 재충전에 대한 방안을 다르게 해소합니다. 이를테면 주 5일제라는 방식으로 해소하고, 마치 하나님의 방법이 토지에 대한 안식년을 주는것을 비료로 해소하는 등의 방안인데요.. 안식년을 방안도 주 5일제라는 방안으로 보충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과부하가 걸리지 말라는 법이 없거든요...

하여간 안식년을 위한 기준일에 대해서 좀 부탁드려요.
  답변 : 2005-04-27    
너무나 진지하고 성실하신 자세에 고개 숙여집니다.

“평신도”라는 명칭 자체를 복음 속에서는 쓸 필요가 없음을 여러 곳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질문하신 내용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후에는 율법 시대의 제사장계급은 이미 완료 되었습니다.(히 7:18)

십일조에 관한 질문은 위의 메뉴 [e-도서관] 중에서 [자주올라오는질문] 항목의 141번 "헌금을 교회에만 드려야하나요?" 115번 "연보에 관한 질문" 69번 "십일조에 대해 궁금한 점" 18번 "또 다시 십일조 헌금에 대한 문의" 등등 내용들에서 정신이나 내용 모두 충분히 다루고 있으므로 참고하십시오.

다만 여기에 첨가할 것은 구약의 모든 제도는 단순히 종교제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탁을 받는 국가의 모든 정치와도 별개가 아니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모든 조항들은 곧 국가의 법령이었고 제사장들이 국가의 관료 직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질병에 대한 검진이나 성결과 부정의 판단(레13장)조차도 제사장들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이런 일을 한다면 엄청난 비리가 발생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안식년 제도에 관한 것은 당시에서는 농경 1차 산업의 시대에서 토양에 대한 재충전이 목적이었습니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가뭄이 심해서 어쩔 수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한 경우에 이듬해에는 지렁이라든가 미생물이 많이 번식해서 걸음(堆肥)을 별도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땅이 비옥해 지는 것을 보곤 했는데 신앙하기 이전에는 몰랐지만 성경을 읽게 되면서 신통하고 오묘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에 감탄한 바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토지에 대한 안식년을 주는 것을 비료로 해소하는 등의 방안”은 단순한 소출의 증대를 위하는 측면이라고 이해하는데 취하는 자세로 저 역시 공감할 수 없습니다.

땅의 휴식 없이 특히 퇴비(堆肥) 보다는 금비(金肥)를 많이 사용하게 되면서 토양은 심하게 산성화 되고 모든 미생물이 죽어 버려서 좋은 먹거리의 생산이 어려워 지고 그러한 폐해(弊害)를 의식하면서 유기농(有機農)이 장려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안식년 제도는 위에서 말한 국가와 신앙이 하나이었던 제정일치(祭政一致) 인 이스라엘 상황과는 다른 입장에서는 그 제도보다는 정신을 응용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인 교회에서 하나님의 법이 온전히 다스려 진다면 모든 것을 구속의 십자가 피를 바탕하고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골 3:17); (벧전 4:11)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한다면(고전 10:31) 이런 원리는 어렵지 않으리라 확신합니다.

주 5일제에 관한 의견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창조주의 창조원리 보다는 인간의 이성주의와 편리가 만들어 내는 산물들은 궁극적으로는 득이 되지 못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조목 조목의 분석보다도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성경 전체맥락에서 모든 원리는 늘 이해하고 적용되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완료된 율법의 정신이 복음 속에서는 자구에 매임보다는 사랑 안에서 보다 자유 하는 감격을 누리시길 빕니다.

논리적인 질문보다 단순한 답변이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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