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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신앙적인 부분에서.....
  질문 : carol ( 2005-09-17 )   
요즘 신앙적인 부분에서도 제 마음,정신적인 부분에서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0년간 살면서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왔고, 또 하나님도 그걸 좋아하실거라 생각해 제 자신은 그걸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원하면 힘들어도 해왔습니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제 한계를 알게 됬고, 제 한계는 여기까지니깐 "그 이상은 요구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친구한테든 어른한테든 조심스럽게 표현했음에도 상대방은 저에 대한 집착? 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제가 대개 순해보이고 착해보인다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저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많은 상처를 안고 있는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하고 ,못하는 게 있는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근데 간혹 사람들은 특히 어른들은 제가 신앙생활한단 이유로 제가 그 상대방에게 거의 완벽하게 하길 바라고 또 전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해합니다. 전 다만 지금보단 더 잘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할뿐이지 완벽하지 못한데 말입니다.
몇일 전엔 도, 가끔 이런 부분땜에 넘 힘들고 숨이 콱콱 막혀 친구한테도 특히 어른한테 화를 내게 됩니다.
지금은 노이로제까지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어른한테....
절 그냥 사람들이 내버려둬도 제가 할 도리 안할 그런 사람 아닌데, 사람들은 절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절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자꾸 조종하고 휘두르려고 합니다. 제가 그 부분땜에 넘 힘들어
그렇게 하시지 말라고 표현하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제가 화냈다고 도리어 저보고 싸가지 없다고 합니다.
강해보이는 사람한텐 감히 요구도 못할거면서 저처럼 약해보이고 착해보이고 순해보이는 사람한텐 왜이리 요구하고 그 요구를 못 들어주겠다고 하면 엄청 실망하고, 화내고 그러는지....제가 제 한계에 대해 표현함에도 말입니다.
신앙의 부분에서도 고민이 됩니다.  예수님도 화나실 땐 화내고 자기 표현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제 한계를 표현하고 그 부분을 못하겠다고 말한 것이 신앙인의 부분으로 안 좋은건지 아님 신앙인은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상대방이 원하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 그 요구를 들어줘야 되는 건지...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고민이 됩니다.
믿기만 한다고 천국가는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지 천국간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 그릇도 작고 믿음도 연약하고 그 동안 사람들한테 받은 상처도 커서 제 한계를 뛰어넘어 상대방 원하는대로 해주게되면 제가 받게 될 상처가 큽니다.
또 상대방이 원하는대로 안해주면 상대방이 상처받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누가 아무리 조종하려하고 하고, 뜻대로 안 움직여주면 화내고 해도 진정으로 기분도 안 나빠하고 화도 안나고, 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아님 누구나 저의 경우를 당하면 힘들고 화가 나나요? 제가 속이 좁아 그러는건지 신앙안에서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답변 : 2005-09-19    
늘 경님의 탄원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사람들에게 착해 보이고 순해 보이고 그래서 사람들은 경님께 기대를 갖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세상에 오고 간 역사 속의에 사람들 중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위대하다는 신앙의 조상들도 다 불완전했습니다. 오직 완벽한 한 사람 그분은 우리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가능성을 주시기 위해서 완벽한 하나님이셨음에도 불완전한 모습인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감당하셨습니다.

자신의 선택한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영접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민족반역자로 몰아 얼굴에 침 뱉고, 뺨을 치며 조롱하고 옷을 벌거벗겨 십자가에 모진 고통으로 죽이고 말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당하시면서도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오히려 자신을 저주하고 죽이는 저들의 용서를 구하셨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나는 부분을 예수께서 분노하셨던 것에 비길 수는 없는 것은 주님은 자신에게 고통이나 설움을 주는 대상에게 대한 분노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욕되게 했던 무리들에게만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분과 같이 의로운 분노만을 표현할 수 없음을 늘 인정한답니다.

늘 같은 부탁을 드리지만 하나님과 함께 산다고 하는 것은 평탄하고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만 아니라, 힘겹고 괴팍스러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님의 위로로 견디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 믿음의 힘이지요…

일세기에 억울하게 노예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 사도는 당부하기를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8~19) 라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부녀들에게도 비록 불신의 남편에게까지 라도 말(言)로가 아닌 덕스러운 삶을 통해서 구원을 끼칠 수 있게 된다고 격려합니다.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늘 나 자신이 혼자 감당하고, 나 혼자 애쓰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는 확신과 함께 왜 주님을 의뢰하지 않습니까?

자신의 한계를 주님께 맡기고 나는 묵묵히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감사의 이유를 찾고 어른들이나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하나님을 조용히 의뢰하는 자세가 곧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다윗은 푸른 초장과 잔잔한 시냇가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의 음침한 골짜기’ 즉 죽을 것 같은 고난의 장소에서도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식했기 때문에 그 애매한 고난과 모함과 죽임을 당할 위기를 사울 왕으로부터 수없이 받으면서도 최후의 승리자로 남습니다.

믿음으로 살아낸 사람들은 결코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난의 현장 속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삶으로 표현되는 구원 받은 믿음도 역시 나 자신의 삶의 바로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식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주님을 인정하고 의뢰 하십시오. 기도할 때만 맡긴다고 고백하고 기도가 끝나면 다시 그 짐을 찾아 매고 나오지 말고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현실 속에서 온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히려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경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8~30) 고 말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경님에게 주시는 약속임을 확신하십시오.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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