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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다윗의 잘못과 노아의 저주
  질문 : 복 ( 2006-02-03 )   
오늘은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역대상 21장과 사무엘하 24절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하라고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지시를 하고 계수를 다 한 후에 다윗이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하였다고 고백을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한 것이 왜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 되는지요?

그리고 창세기 9장 21절 이하에서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아들 함이 보고 두 형제에게 고하자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준 사건에서 노아가 술이 깬후에 가나안을 저주하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아비의 하체를 본 것이 그렇게 큰 죄가 되는 건지요? 그 당시의 문화가 그런건가요?
그리고 죄를 저지른 함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고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린 것은 왜인가요?
  답변 : 2006-02-04    
이런 질문을 앞에서도 받았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먼저 다윗의 문제는 전쟁을 할 때나 골리앗 앞에서도 전쟁의 승패(勝敗)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삼상 17:47)는 신앙이었음에도 나라가 태평성대의 시대가 되자 자신의 통치의 위엄을 과신하고 자랑하고자 백성의 수를 계수하도록 했던 것이 결국 다윗의 여태까지의 자세가 아니며 (대상 21:1)에 보면 이것을 사탄이 다윗을 충동한 것으로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오히려 요압이 더 신앙적인 것을 봅니다.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 24:3)

이 사건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교훈을 준다고 믿습니다. 잘 된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고 더욱 의지하기보다는 양(量)과 숫자, 그리고 부피에 자신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양하는 자세에서 떠나는 마음은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자녀들이 행한 일에서는 깨닫는 것이 많다고 봅니다.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하는(창 6:9) 노아가 술에 취하여 추태를 보이는 것의 경계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계하고 경성하지 못하면 오늘 아무리 경건하다 해도 그 경건을 잃을 수 있음을 경계합니다.(고전 10:12)

함은 자신의 부모의 수치를 사랑으로 가만히 가려주기보다는 다른 두 형제들에게 떠벌리고 조소하는 것으로 봐서 인륜적으로도 옳지 못함을 봅니다. 단순히 하체를 본 것으로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덮어주기보다는 모욕했다고 하는 것이 함의 옳지 못한 아들로서의 자세입니다.

“죄를 저지른 함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고 가나안에게 저주를 내린 것은 왜인가요?” 하셨는데요, 가나안이 바로 함의 아들이기 때문임을 본문에서도 두 번이나 언급합니다.(창 9:18), (창 9:22) 결국 아비의 허물을 덮어주지 못한 함은 자손에 이르기 까지 축복 대신에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어떤 경우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의 다윗의 행위와 함의 자세가 과연 그렇게 큰 저주 받을만한 실수인가? 라는 의문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타난 결과들만 볼 수 있는 우리는 판단에 한계를 갖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처분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계는 분명히 거기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이러한 부족한 안목은 완전한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고전 13:12) 그때까지는 우리의 불완전한 이해를 미뤄둘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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