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0 . 성령에 관하여 |
|
|
|
질문 : 은혜 ( 2006-07-27 ) |
|
| 한번받은 성령이 소멸될수있는지? 또한 떠나갈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오는 결과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굼합니다. |
|
|
|
답변 : 2006-07-27 |
|
앞에서도 비슷한 질문과 답변들이 있었으므로 검색해 보시기 바라고...
먼저 구약과 신약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께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기 전까지도 하나님의 성령은 특정한 사역을 위한 사람들에게 오셨다가 그 사역이 마무리되면 떠나는 것을 구약성경에서 더러 보게 되는데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면 삼손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마태복음 10장 같은 경우도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함께 하심으로 능력을 행했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뿔뿔이 도망가는 나약함이라든가 주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요 7:37~39)참조]
이 말씀에서 주의를 기울일 것은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라는 약속이며 마치 마태복음의 말미에서 “…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b)는 약속과 같습니다.
구속의 십자가 은혜를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약속(행 2:38)이 분명하고 이런 입장에서 바울 사도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고 까지 선언 합니다.
연이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4~16) 라고 하여 하나님의 자녀들과 성령의 밀접한 관계를 논술합니다.
또 우리가 주님을 알기 전에도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감화해 주시지 않으면 주님을 영접할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b) 이 말씀은 더러 오해를 가지는 말씀입니다. 마치 성령께서 안에 내주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으로만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의 기록된 구원의 말씀을 누군가로부터 인간의 소리로 들을 때 안에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그 심령을 감동하시고 이러한 성령의 감동 없이 사람의 소리로만 복음이 전해진다면 사악한 인간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음을 말씀하는 것이 성경 전체에서 조화로운 이해일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경계도 주어지고 있는 신약의 표현들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는 말씀과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 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여기 “성령을 ‘소멸치’ 말라”에서 [소멸]이라는 말은 마치 불을 [끄다]라는 표현과 같은 헬라어 “스벤뉘미(sbennymi)” 라는 표현이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그 밖에도 ‘억누르다, 저지하다, 방해하다, 훼방 놓다, 멸하다.’ 등등의 의미들을 갖는 단어입니다.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늘의 영광의 주님과 성령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게 하는데 그 스위치를 꺼 버림으로서 빛이 아니라 어두움의 모습으로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빛을 반사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성령을 단절하면 당연히 어두움밖에 인간에게 나타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는 권면도 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만 이야기 하면 성령을 너무 기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앞에서 살펴 본대로 구원의 약속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구약의 성령처럼 왔다 갔다 하시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면에는 성령께 근심하시도록 하는 일이나 소멸하는 행위만을 한다면 성령은 그러한 사람 속에 역사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경계는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1~32); (막 3:28~29) 하신 것입니다. 이 부분은 어디 다른 곳에서 답변을 드렸기 때문에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어떤 죄를 졌을지라도 회계하면 용서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하는 삶을 회복하고 성령의 충만을 구한다면 하나님은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하는 것 보다 악을 즐겨 행한다면 그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리 없을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오는 결과들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잘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많은 사람들은 성령의 임재를 꼭 신비한 것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가르치는 이 부분을 보면 지극히 도덕적인 항목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로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본다고 하면서도 생활은 비도덕적이고 정결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데 갈라디아서가 가르치는 것을 보면 결코 그러한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죄의 속성이 더 강할 수 밖에 없는 육신의 사람이 성령의 사람으로 사로 잡히면 모든 삶에 영육의 균형을 잡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경건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비록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면서도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는 하늘의 사람이 될 것이고 바로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갈 3:27) |
|
|
|
|
|
|
|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
|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