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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답변 감사합니다. 재질문입니다.
  질문 : 다니엘박 ( 2007-08-23 )   
이 도서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마음에 생기는 의문이 있어 글 올립니다.

이와 같이 명백하게 문제가 있는 신앙고백문을 시정 없이 계속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와 같이 평범한 사람도 느끼는 문제를  목사님들이나  신학 대학에서

모를리 없는데  왜 계속 사용하는 거죠?

다른 것도 아니고 신앙고백인데,..... 쉽게 말하면 신앙 고백을 어뚱하게 하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란 생각이 드는데요.

모두 문제를 인식하고 있음에도 바꾸지 않는 것은  혹 하나님보다 두려워 하는

뭔가가 있어 그러는 것은 아닌가요?

이렇게 명백하다면  몰라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4세기 전후 있었던  종교회의의 권위를 못 넘어서서 그러는 건가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배경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변 : 2007-08-23    
언제나 의로운 안타까움을 갖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각 교파나 교단들이 헌법이나 장정으로 신앙의 범주를 묶어두고 있어서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 타 교단이나 다른 사람들의 권면을 받아 드리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님들처럼 깨달은 분들이 자신들의 교회 속에서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성경외에 인위적으로 어떤 신조를 만드는 것들이 이런 이유 때문에 경계되어야만 합니다.

처음에는 신앙의 흐트러짐을 방지한다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더라도 시간이 가면서 그것이 고착화 되고 교리화 되어서 마침내는 그것이 성경을 어기게 되는 위치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성경으로 돌아 가자!"는 각성은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사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정신은 희미해지고 외형적인 것들만 남아서 인본주의의 또 다른 물결이었던 같은 시기의 르네상스와 같이 별반 다르지 않은, 세월이 흐르면서 진부한 형태로 사전적인 용어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16세기의 루터로부터 시작한 깨달음은 교조화(敎條化) 되고 형식화 된 종교가 아니라 성경과 성령과 함께 오늘의 삶의 현장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그런 신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깨달은 데서 시작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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