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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창세때 심판이 많은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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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김상규 ( 2004-0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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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질문: 전지전능을 전재로한 하나님 께서
통치하신 창세기때 왜심판이 왜 많았은가 하는이유
두번째질문: 이삭의 아내며 애서와 야곱의 어머니의
편에로 장자가 받아야할 축복이 차남에게 넘어가고
결국은 형제를 싸움판으로 만들고 외가로
피신가지 보내는 니부가의 편에에대한 질문
올렸는되 창에뜨지도 않고 답변도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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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4-0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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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규님!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째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은 천사나 누구보다도 사람이 읽고 이해하도록 쓰여진 책이라는 점입니다.(요5:39) 절대적인 가치를 상대적 가치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안전하게 우리 사람들을 로봇처럼 전능하신 능력으로 조절하실 수 있는 분이시지요. 그러나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창조하신 의도는 손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 하셨습니다. 다른 동물이나 식물은 허용된 한계 안에서만 행동하고 싫어도 그 범주에 복종하는 것을 봅니다.(로마서 8:19~22 을 참고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자유로운 행위에는 반드시 자신이 자유대로 행한 행동에는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완전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예를 든다면 아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지만 안심이 안 되어서 방에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한다면 안전하기는 할지 모르지만 이 아이는 창조성이나 사교성은 전혀 갖지 못하는 아이로 자랄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는 것 때문에 평생에 물가에 못 가게 한다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물에서 즐기는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죄에 대하여는 진노하시는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속성은 다 만족되어야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길 때 경외(敬畏) 즉,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 사랑과 공의의 절정입니다.
구약의 마당에서 인간이성으로 생각하면 이해 안 되는 것이 말씀하신 야곱의 가족이야기뿐이겠습니까? 저 역시도 신앙 없이 이성적으로만 성경을 읽을 때는 온통 이해 안 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절대적 구원의 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모든 인류가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들을 두고 볼 때도 같은 일일지라도 남의 아버지가 한 것은 이해가 어렵지만 자신의 아버지가 한 것들은 이해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믿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선하신 분이시다." 라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대하면 이해가 됩니다. 불신의 눈으로만 성경을 보면 의심 투성이의 책이지만 믿음으로 볼 때는 생명을 풍성히 주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루어 진 책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부분인 베드로 후서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보십시오. 분명히 하나님 우리 아버지는 사랑이십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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