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108 .  그리스도인의 자녀 교육
  질문 :
하나님의 선한 일꾼되시는 분들께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간구드립니다.

자녀를 가지신 분들은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나에게 맡겨진 자녀를 말씀 속에서 올바르게 양육할까 고민이 되지요.
저의 아이는 중3인데,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부모님의 체면과 의무감 때문에 교회에 간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무척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자녀교육(신앙훈련)에 관하여 좋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경우도 함께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 2003-05-12
귀중한 질문을 주셨는데 시원한 답변이 될지 송구스럽습니다.

성경 특히 구약 성경 속에서 자녀교육 실패에 대한 예는 대단히 빈번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아들들도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삼상2: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까지 기록하고 있는데 분명히 부모의 교육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삼상3:13)

구약 속에서 대단히 경건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사무엘 조차도 자녀 교육에는 실패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삼상8:3, 5) 이러한 예는 수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힘겨운 과제가 있다면 바로 자녀 교육의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신앙인으로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절박한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특히 중학생쯤 되면 신앙적인 분위기인 가정이나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세속적인 상황에 노출되는 시간이 더욱 많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기 쉽습니다. 오늘날의 교육은 거의 소돔성의 롯의 딸들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어떻게 지킬 것인가? 걱정이 됩니다. 또 이것은 우리의 가장 절실하면서도 긴박한 과제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1.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의 방법이 첫째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고전1:25)

신명기서를 비롯한 율법서들과 솔로몬의 잠언 속에는 요즘 우리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자녀 교육의 방법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케 하기 위한 것이라"(신6:2)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6~7절)

특히 여기에서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라고 하는 말씀은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 속에서 입으로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보임으로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효과적인 신앙 교육은 "삶의 전달"이라고 볼 때 그렇습니다.

오늘날 신앙의 이원화(종교 생활과 일상생활이 분리된)는 양육을 받는 자녀나 제자들에게 회의감을 주고 비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생명의 능력을 부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부모나 선배 신앙인들로 인하여 가치 없고 고리타분한 계율로 이해하게 만드는 하나님 앞에서 또 하나의 불경건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의 자녀들이 탈선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강단 위의 삶과 강단 아래의 삶이 다른 아버지 때문이라는 말들을 더러 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정신으로 교육해 온 이스라엘의 교육은 지금도 우리의 교육현장과는 다른 것을 봅니다.

2.약육강식의 세상적인 교육방식에서 지켜져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바탕으로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원칙이 지배하는 현실의 시대는 인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과학의 발달과 함께 완전히 진화론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적자생존'이니 '용불용설', "자연도태" 같은 진화론적 논리가 그대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 역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사단의 역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러한 논리로 대부분의 교육을 거쳐왔고 이러한 이념은 이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관영 하는 말세지말적인 상황에서 처신을 잘하여 능수능란한 밀림의 동물로 교육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배격되고 있는 논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히려 약한 자들,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의 약점을 강한 자가 감당하고 짊어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롬15:1; 고전1:27, 고전8:9; 살전5:14)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세상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신앙 속에서는 약한 것을 자랑하기도 합니다.(고후11:30, 고후12:5, 9)

그런 입장에서 너무 먼 얘기 같이 들릴 지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에서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를 완전한 그리스도 중심의 세계관으로 교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가치관과 하나님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는 동물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밀림의 원리가 아닌, 서로 의존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삶의 바탕에 심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소신 없는 교육들을 자녀들에게 시키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초등학교부터 신앙이나 정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학원을 쳇바퀴 돌 듯 아이들을 혹사시키면서 "다 그렇게 하는데 우리 아이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 남느냐?" 라고 하는데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심한 경우에는 주일날도 학원 보내는 것 때문에 교회에 오질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저의 판단으로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생각이 아닌 것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자녀를 맡기신 것은 육신과 정신, 지식의 양육에 대한 책임보다도 영혼의 양육을 더 귀중하게 여기셔서 맡기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신을 갖지 못하는 많은 신앙인들이 좀 과격하게 표현하면 세상의 모든 동물 훈련에 우리의 자녀들을 그대로 내맡기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행한 결과들을 지금 열매로 거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 육 어느 쪽의 양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할까를 우리 모두 각성해야만 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경쟁에 길들여지는 교육, 참으로 한심하기까지 합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은 세계 명작 동화를 거의 다 읽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요즘 아이들은 시간에 쫓겨서 동화나 성경보다는 짧은 시간을 유용하게 노는 것 때문에 컴퓨터 오락을 더 선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맹수의 훈련장으로 내모는 일을 삼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세상과 차별화 된 삶의 경험입니다.

이것도 신앙과 관련되어 진다고 봅니다. 우리 각 교회와 가정의 영성이 회복되어 진정한 기쁨이 있는 작은 천국이 된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세상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 것입니다. 세속 교육의 과다한 투자로 경제를 위해서 부모 자식간에는 관계가 소원해 지고 제대로 가족이라는 끈끈한 사랑의 정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을 만들었고 부모들이 쉽게 내뱉은 약속(체벌까지도)은 쉽게 어겨지고 그런 가운데서 서로의 신뢰감이 바닥나 버린 오늘의 가정은 가장 심각한 교육 현장입니다. 이렇게 된 가운데에서는 부모의 권위도 상실 될 것입니다.

우리 서로간의 하나님을 의식하는 '진실성'과 십자가의 희생에 바탕한 '용서' 그것은 설령 자녀가 일 순간 빗나갔다가도 회복될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가족간에 내어놓을 수 있는 가정, 그것은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큰 안식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세상과 별반 다름이 없는 단순한 '의무'와 '필요'의 관계가 된다면 우리 자녀들의 교육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부모들은 " 내가 너희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고 하고 자녀들은 "나는 하라는 대로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피곤한지 아십니까?" 하는 서로의 피해 의식만 키워 갈 것입니다.

말 한마디면 '정말이야!'가 필요치 않은 부모와 자식간의 신뢰와 우리 가족간에 용서 못할 죄는 없다는 강한 확신과 가정 경제가 어려우면 자녀들에게도 있는 그대로를 공개하고 협조를 구하는 의의 통치를 받는 가정이라면 보다 차별화 된 세상 속의 도피성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4.경계선을 분명히 그어줘야 한다.

이것은 위의 3번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가정이라면 어렵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에덴 동산의 법칙과 같이 자녀들의 세상과의 경계선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겨진다면 부모와 자녀가 함께 회개하고 체벌을 당하는 방향으로 징계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녀의 탈선은 분명히 부모도 함께 책임져야 하고 이것은 영적인 입장에서도 옳습니다.

또 진정한 희락을 맛보며 사는 아이들이라면 세상의 향락을 기웃거리지 않을 것이며 세상에 있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사실적으로 인식시키고 그 피해 사례들을 소개함으로 경계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5.오늘의 획일화된 교육과 선호하는 직업을 지양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모든 일반적인 교육의 이유가 시험성적의 향상으로 어느 문을 통과해야 하는 꼭 같은 이유가 모든 우리의 아이들에게 요구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 창조적인 능력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다 독특합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을 한 틀에 맞추려는 우리 교육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 속에서 대단히 맞지 않는 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진출과 직업 의식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꼭 같은 일만 잘하도록 훈련된다면 그 나머지 부분은 어떻게 해결이 되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직업에 대한 귀천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버스 기사가 없다면 모든 서민들이 어떻게 움직이며 농부들의 수고가 없이 도회지의 사람들이 어떻게 먹고살겠습니까.

예수님도 목수이셨고 바울사도도 천막을 만드는 당시에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직업에 소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진출해야 하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천시하는 직업의 사람들일수록 복음을 전하는데 더 용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들만은 서울대를 거쳐 판사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세상 속의 영웅 심리는 부모들의 정욕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명을 목회자로만 인식하는 우리 나라의 신앙 풍조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여러 가지 어렵고 힘겨운 일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땀을 흘리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더 귀중하게 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교육도 이러한 것들을 염두 해 두고 애당초부터 각자의 소양에 맞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달란트를 개발하는 쪽으로 특성화된 교육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여하신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고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악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달란트의 비유를 자주 읽으면서도 적어도 이것을 교육에 적용해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다르게 주어진 달란트를 개발하지 않고 획일화된 방향으로 자녀들을 이끄는 것을 저는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엄하신 말씀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진화된 교육일수록 어려서부터 각자가 가진 능력을 개발하는 식으로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육(educare = e-out + ducare-lead up, bring up)" 이라는 본래의 의미가 '밖으로 끌어낸다'거나 '밖으로 인도해 낸다'는 뜻임을 볼 때 사회적인 한 구성원으로 한 사람을 교육시킨다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사회에 필요한 달란트를 주셔서 내 보내신 것을 하나님의 의도하신 데로 그의 속에 잠재해 있는 달란트를 개발하여 적용케 하는 것'이라고 감히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세상교육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신앙이란 교회나 가정 속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고 세상 속에서도 동일한 하나님의 명령이십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세속화된 신앙인들의 교육이 사회 교육에 뒤쳐지고 있고 이것은 결국 사회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먼저 사회 교육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도록 소신 있는 신앙인의 자세로 교육을 하는 것이 신앙 교육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제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방법이 첫째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약육강식의 동물 훈련장 같은 세상적인 교육방식에서 우리의 보배들은 지켜져야 하며, 세상과 차별화 된 삶의 경험을 축적할 수 있도록 우리 각자의 가정의 영성을 회복하면서 세상과의 경계선을 분명히 그어줘야 하고 오늘의 획일화된 교육과 선호하는 직업을 지양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각 인격에게 부여하신 달란트를 개발하는 쪽으로 특성화된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교육의 중심에도 주님의 십자가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부모들의 헌신적인(자기의 욕구 실현의 방편으로의 교육이나, 내가 너를 위해 이만큼 애쓴다고 하는 생각이 배제된-십자가를 지는) 희생과 사회에서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각오와 물질의 공급뿐 아니라 기도의 헌신(정욕적인 나의 이상의 실현을 떼쓰는 기도가 아닌)도 반드시 병행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의 의탁이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말(語)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늘 너무 과다한 주문은 권위를 잃고 잔소리로 전락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입술의 주문보다는 보여 주는 삶으로서의 모범이 분명 더 호소력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소신 있는 교육이 가능하고 세상의 경쟁의 중압감으로부터 자유 할 것이고 보다 영적인 훈련에 힘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지적된 부정적 내용은 질문자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하는 사실일 뿐입니다.

또 실패나 성공 사례는 들지 못해서 죄송하고 저의 외동 딸아이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이라서 아직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이러한 소신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무 긴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조그만 소신과 도움을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딘 연장이...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