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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 .  교회에 다녀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나요?
  질문 :
안녕하세요?
예배 참석에 대해 문의 드립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열매는 행함으로"
"상급은 드림으로" 이루어진다고 배웠습니다,
즉,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행함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으며. 많은 헌금을 드림으로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예배에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아니라고 하시지요.
공식적으로 정해진 예배가 주일예배, 수요예배, 철야예배, 가정예배. 매일 새벽기도인데 이 모든 예배를 참여하지 않으면 그 믿음에 의심이 간다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할지 고민입니다.
주일을 온전히 드리고 봉사하는 것으로는 부족한지요?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답변 : 2003-05-12
김미나님의 신앙에 대한 열정에 경의를 표합니다.

질문에 사용된 용어들을 통해 보건데,
미나님께서는 의문에 대한 대답을 나름대로는 가지고 계시지만 의문의 핵심에 약간의 문제가 있음으로 혼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미나님께서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가?"라는 것보다는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때에 구원을 잃게 되는가?"로 말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라고 하는 명제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은혜의 법칙입니다.

예수를 믿었다고해서 우리의 육체에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전히 죄는 존재하고 흔적은 영원히 남고 의식주를 통해서만 육신의 건강이 유지되고```
그러나 믿음이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라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이신칭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때문에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지시기도 했지만)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들은 몇 가지의 축복된 의무를 지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예배입니다.

실상 예배를 드림은 인간 외에도 모든 만물들이 지음받은 처음부터 마땅히 행해야할 도리였습니다. 시편을 보면 만물들 하늘, 땅, 바다, 초목, 동물 등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만 인간들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림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구원 얻은 성도가 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배 드림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제 제가 믿고 있는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방법은 분명히 믿고 세례를 받았을 때에 가능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구원의 원칙입니다.(마가복음 16:16, 사도행전 2:37-41)
그리고 그 후에는 구원을 얻는 단계가 아니라 구원을 지키는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서 바울이 말하였듯이 구원을 얻게되는 믿음을 버리게 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효력은 상실됩니다.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되돌아간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한 구원을 지키지 못했다라고 보는 것이 성경의 원칙일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이미 말씀드렸듯이 죄의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옛사람을 장사지낸 바 된 세례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리고 예배드림은 구원 얻은 성도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아가 자신의 믿음을 지켜가고 봉사할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배에 참석할 여건이 됨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계속하여 공식예배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지킬만한 믿음이 있는가?"를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다만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부득이하게 예배에 참석이 어려울 때에는 그가 얻은 구원, 즉 하나님의 자녀된 영적 신분에 누가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어쩌면 전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대답을 기다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을 얻게 되는 믿음을 버리게 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구원의 효력은 상실됩니다. 믿음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되돌아간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한 구원을 지키지 못했다라고 보는 것이 성경의 원칙일 것입니다." 에 의문이 생겨 다시 문의 드립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은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인지요?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으며,하나님께서 값없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까지 구원을 끊을 수 없다고 믿는데 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인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예배란 하나님과의 공식적인 교제요 교통입니다.

물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과의 교제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의 결과로 봐야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과 교통하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특히 주일 예배는 나를 나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죽으심을 확인하고 감격하는 주의 만찬이 중심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11:26) 이러한 예배가 안식 후 첫날마다 이루어지고(행20:7) 또 한 주간을 주님의 은혜로 인하여 살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많은 헌금을 드림으로 상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는 표현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백성으로서 물질을 하나님 앞에 드려서 가난한 지체들과 삶을 나누고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지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상급이 쌓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자신이 은혜로 구원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는 도구로서 물질을 드리는 것 역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우리는 모든 신앙의 행위를 구원받거나 상급 받기보다는 구원받고 은혜 받았기 때문에 예배드릴 수밖에 없고 물질을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치 말기 암 환자가 소망이 없다가 고침을 받았다면 자기를 고쳐준 사람에게 재산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인생들이 값없이 생명을 얻었으니 무엇을 더 아까워하겠습니까?

이러한 감격과 기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예배요 물질의 드림의 이유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딘 연장이...


주신 답변 감사드립니다.
가슴이 쉬원한 답이 아니라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물론 구원 받음에 감사하고 너무 기뻐 모든 것을 드리고 기쁨으로 예배 드림이 마땅하나 환경과 여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과 참여하는 것에도 개인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 예배 시간에 참여하지 못할 경우와 헌금의 참여도가 낮을 경우에 믿음이 적은자라고 결론을 짓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헌금과 예배 참여는 곧 믿음과 비례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위에서 드린 답변에 합당한 입장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소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이상 많은 제약을 받기는 하지만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다면 사람들의 안목에 좌우될 필요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 중심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마음 중심을 무엇이 지배하느냐 하는 것은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은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계셔야합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렇게 잘못 보는 사람들이 더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사회에서는 직장도 너무 다원화되어서 어떤 분들은 밤 11시에 직장에 가서 새벽 4:30분에 돌아오는 분들도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신앙의 삶에 거리끼는 것이라면 그런 일은 그만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중심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거듭난 삶이 있고 이것을 중심해서 예배는 물론이려니와 우리의 삶 전체가 구성되어져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일부러 교회의 공식집회에 등한하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지만 삶의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면 그렇게 평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공식적 예배와 함께 세상 속에서도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들여진 삶이어야 합니다.

공식 예배 즉, 격식을 갖춘 예배가 요한복음4:23~24 이라면 세상 속에서 연장되는 예배는 로마서12:1이라고 받아들여집니다.

"헌금과 예배 참여는 곧 믿음과 비례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하셨는데 이것은 적어도 보이지 않는 믿음이 보이는 모습으로 들어 나는 행위라고 하는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체적인 삶이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생명의 주님을 첫째의 자리에 두는 삶이 된다면 누가 무어라 하든 거기에 좌우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예배이건, 연보이건 적당히 의무에 의해서 억지로 이루어지는 삶이라면 아무리 집회에 빠지지 않고 연보를 많이 드린다고 해도 과연 구원받은 삶인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사1:11~15) 결국 참여하고 드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삶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우리)도 하나님께 모두 드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삶이기를 빕니다.

무딘 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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