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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  선교에 대한 궁금점
  질문 : 2003-10-07
반갑습니다. 전 지금 부경대학교 기계공학부 1학년에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오늘 제가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제가 교양 수업을 듣는데 이 강의 시간 때 교수님으로 부터 들은 내용에 대해서 의문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저의 애기를 좀 신중히 들어 주시고 저의 궁금증을 풀어주세요.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야기는 1870년에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면서 시작됩니다. 교수님의 강의에 의하면 선교라는 것은 단 하나 선교의 목적이 아닌 선교+시장개척용이라고 했습니다.한마디로 미국의 물품들을 수출하기 위해서 각국에 기독교가 전파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말이 안될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맞는 말인거 같기도 합니다.이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께 찾아가서 저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지만 교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교라는 목적도 있었지만 시장개척의 의미 또한 있었다고 하더군요.

이 점에 대해서 100% 선교을 위해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에 대한 예가 있으면 제 멜이나 게시판에 답변으로써 올려주세요. 다음주 수요일 그러니까 31일날 교수님께 이거에 대한 저의 의견을 적어서 낸다고 했거든요. 화요일까지는 답변을 해주셔야겠죠? 바쁘시겠지만 도와주세요. 저는 괜찮지만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은 이 강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곁으로 영원히 가지 못 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교수님께 모든 선교사들의 그런 것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담 시간에 이거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해주라고는 했는데 객관적인 자료가 없네요..

그리고 정말 이 시기에 선교가 주 목적이 아니고 시장개척의 목적으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이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그리고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1884~1898까지 학교와 병원을 같이 지었다고 하는데.. 학교와 병원이 부수적인 것이 이유가 아니고 주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기독교를 믿을때 신앙의 확신 보다는 그 사람들이 우리들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독교를 믿게 되었다고 강의하였습니다. 이것도 정말 사실인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요즘도 선교를 나가게 되면 왜 먼저 학교와 병원을 같이 짓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 보니 의문점이 생기더라고요.. 의견을 듣고 싶네요..

그리고 1901년에 장로교가 중립화 선언을 하면서 그전까지의 교육과 병원에서 손을 떼고 오직 신앙쪽만 하게되었다고 하던데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1907년에 종교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기독교인들이 친일주의자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의 설명에 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라는 내용으로.... 정말 이 때 기독교쪽의 전체적인 흐름이 친일쪽으로 흘러갔는지 만약에 그것들이 사실이라면 그 중에서 친일하지 않은 신자들은 없는지 그 예도 궁금하네요..

마지막으로 1920년대에 기독교의자들이 사회주의자로 변화되어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을 없앤다고 하였습니다.그것이 기독교의 한계점이었다고...교육과 병원등의 장점도 있었지만...1920년대의 기독교 신자들이 정말 사회주의자로 넘어갔는지 그렇지 않다면 그것을 증명할 자료는 있는지 궁금하네요..특히 이부문에 대해서는 교수님과의 상담 때 교수님께서 1920년대의 기독교인들이 사회주의자로 변하는 것에 대한 논문을 저에게 보여 주신다고 했거든요..그러니까 더 세밀히 알아야겠죠?

오늘 이 수업을 들으면서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 강의를 듣고나서 사람마다 다르니깐 저럴수도 있지?하고 넘어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전 왠지 그렇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말 위에서 말한 내용들이 기독교의 현실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저 나름대로 교수님과의 면담 때 저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선교사들중에서 시장개척의 이유로 들어온 사람이 있을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것이라고... 그리고 친일로 넘어 간다고 했는데 끝까지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가 옥에서 생명을 마감한 목사님들도 계셨다고..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못이 밝인 바닥을 걸어간 목사님들도 계셧다는 것을... 그냥 제가 알고 있는 부분을 교수님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말은 했지만 정확한 자료가 없기에 도움을 청합니다.. 저야 그냥 이게 전부다가 아니다라고 믿으면 되겠지만 아직 주님을 모르는 학생들이 이런식으로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면 그들의 기독교에 대한 불신을 커질것 같아서..

안타까워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교수님께서도 저의 설명을 듣고 다음시간에 모두가 그렇지는 않았다고 언급하기로는 햇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전 이 시대의 확실한 기독교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정말 위의 것들이 사실인지...

도움을 청합니다.. 도와주세요...다음주 화요일 저녁까지는 답변을 주셔야 합니다. 전 이만 물러 갑니다.. 제 이멜로 답변주세요...
  답변 : 2003-10-11
우리가 가진 교회사나 선교역사에는 우리 나라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온 선교사들이 선교의 목적이 아닌 선교+시장개척용이라는 내용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을 두고 평가를 할 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전제를 가지고 접근합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의 말씀을 구원 얻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어도 그 속에서 문학적인 부분(아가서나 욥기, 시편 같은)만을 다룰 뿐 구원의 메시지를 접하지 못합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성경이 결코 인간에게 구원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며 진리가 아니라 모두가 거짓 투성이 이며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 인간의 의도에 의해서 쓰여진 책이라는 증거를 찾으려고 성경을 뒤적거리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선교역사를 평가하려고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성경 속에도 나옵니다. "그들이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전해 들었을 때에 '더러는 비웃었으나', 더러는 "이 일을 두고, 선생의 말을 다시 듣고 싶소"하고 말하였다.(행17:32)

베드로 사도도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이미 2천년 전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나는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여러분이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 진리를 비웃고 그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정말 예수께서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거야? 예수는 절대로 오지 않아. 이 세상이 창조된 뒤 어느 한 가지 달라진 것이라곤 없잖아?'"(벧후3:3~4)

또 구약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우리의 역사는 관심이 없으면서 왜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느냐?"고 비아냥거릴 수도 있습니다. 학교와 병원을 같이 지은 사실도 복음을 통한 영육(靈肉)의 전인적인 치유와 문맹(文盲)을 퇴치하고 향상된 삶의 질을 누리게 하고자 하는 의지였지만 불신의 사람들이 그것을 바르게 평가해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교회의 선교로 우리 나라에 문맹률이 현저하게 낮아졌지만 그런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질 않습니다. 또 일제시대 때 친일파가 되어 일본 순사들의 앞잡이가 되어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을 곤경에 빠뜨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 찬송가 461장을 작시한 김활란 여사 같은 사람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겠습니까? 불신의 사람들은 바로 변절한 기독교인들을 중심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매도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앞에 창, 칼질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좋게 평가해 주질 않습니다.

그리고 교수께서 "기독교인들이 사회주의자로 변하는 것에 대한 논문"을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불신의 경제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은 그런 논문을 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논문이라는 것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근거들을 들추어 체계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성격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敎는 그 성격상 절대로 사회주의와 하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이라고 거부한 것이 아닙니까? 사실 학생의 신분에서 교수를 움직여서 자신이 한 강의를 번복하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사실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자존심은 강합니까). 이것은 성경 식의 표현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까요! 방법도 성경의 방법 그대로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이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질문하신 학생이 그리스도인이고 그 교수가 불신자라면 학생들은 평상시 두 사람의 삶의 모습에서 신앙과 불신을 평가할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학생의 하나님께 헌신된 삶은 더욱 중요합니다. "역사 속의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께 대한 삶의 헌신"입니다. 이것이 더 호소력이 있고 하나님은 이를 위하여 학생을 그 상황에 두셨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에스더4:14). 그리고 교수께도 물론 기도하면서 좀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십시오. 일반적으로도 그리스도敎가 우리 나라에 끼친 영향은 배제한 체로 도매금으로 매도해 버리는, 지식을 팔아먹는 장사꾼 같은 사람들은 양심적으로도 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교수라는 위치가 학생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하지만 신앙에 관한 한 어떤 것도 이성적으로 이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반대로 생각하면 오히려 학생이 그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그 사건을 매개체로 해서 보다 생명 적인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심을 믿을진대 인간이 끝났다고 손을 털어 버리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롭게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들도 여기에 답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직접적인 자료는 드리지 못하면서 말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고민을 가진 학생이 소신 것 이 상황을 감당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계기가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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