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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병고치는 은사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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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2003-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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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BCC 성경연구 과정의 사도행전을 보면 이적이 현재에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의 병 고치는 은사와 어떻게 다른가요?
(김성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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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3-1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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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소위 말하는 "신유의 은사"(병 치료)니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는 행위들은 성경의 본래적인 모습과 상당히 다른 것들을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시대에 있어서의 표적이나 이적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할 것도 없고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면서 기도하거나 다른 행동 없이 단순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조금 뒤의 기록에서는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 5:15~16)
이것은 비단 베드로 사도에게만 일어난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행19:11~12)
이러한 내용은 거의 베드로나 바울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사람들이 바울 사도의 사용하던 것들을 그 필요로 하는(질병이나 악귀 들린 자) 사람들의 위에 올려놓기만 해도 이런 모든 것들이 치료되고 악귀가 떠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도 나타났습니다.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행 8:6)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보면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능력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사도들의 제자(사도들로부터 안수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남으로 이러한 능력은 자연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이 성경을 건전하게 이해하는 견해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러한 표적과 기적을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내셨느냐?'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성경의 몇 군데에서 이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막 16:20)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 14:3)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12)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히 2:3~4)
앞의 말씀들은 한결 같이 "그들이 증거 한 말씀을 확증하기 위하여" 이적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즉, 성경이 완료되면서 이러한 기적이나 병을 치료하는 이적은 목적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이러한 내용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는 증거들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령 만년에 로마에서 바울사도께서 쓴 편지를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 4:20)라고 디모데에게 편지를 주고 있는데 앞의 사도행전의 기록과는 너무나 다른 면모를 보게 됩니다.
말년에 바울사도가 능력이 떨어져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드로비모(행 20:4), (행21:29)를 치료시켜서 유용하게 함께 복음을 증거 하는데 동행하게 하지 않고 왜 밀레도에 버려 두고 왔겠습니까?
이러한 사실들을 이해할 수 있는 증거는 더 있습니다.
빌립보서 2:25~27을 보면 물론 이 빌립보서도 바울사도께서 로마의 옥중에서 기록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의 옥중에서 고생하는 바울 사도를 위하여 연보를 거두어서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을 통해서 바울사도께 보내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물질적으로 돕고 시중들게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가서 병이 들어 오히려 바울사도께 짐이 되고 맙니다. 그것도 거의 죽을 고비를 넘깁니다. 이러한 자신의 안타까운 모습이 빌립보 교회에 알려질까봐서 에바브로디도는 전전긍긍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에바브로디도의 병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바울 자신에게 있었던 '사탄의 가시'의 얘기는 그만 두고라도 바울 사도의 치료의 능력 그것도 자신의 의도에 관계 없이도 치료되던 그 능력이 왜 여기서는 안 나타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분명해 집니다.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막 16:20)든가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 14:3) 라는 말씀들이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표적과 이적은 바로 말씀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형제였던 야고보는 신앙인들의 치료에 대하여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4~16)
기름을 바르는 것은 인정된 치료의 방법으로(눅 10:34) 할레이 같은 분들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와 다른 것은 오늘날도 공인된 치료의 방법과 함께 하나님께 긍휼을 구할 수 있으며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는 약속은 유효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이적적인 치유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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