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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여인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달라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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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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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궁금한 사항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여인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달라야 하며 또,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짝사랑은 어때야 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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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3-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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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면 누구나 보다 근본적인 사랑으로만 채워지는 사랑의 갈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랑의 근본이면서 세상의 어떤 것들로도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공간으로 영적인 부분으로서의 사랑입니다.
신약성경 시대에 나타난 사랑의 용어들은 대개 4가지 정도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 첫째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채워지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사랑이라고 하는; 죄에 잡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제물로 죽게 하신 "아가페(Agape)" 라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나눔의 신령한 이 사랑이 왜곡되게 잘못 표현되고 있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될 것이고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시는 이유가 사랑하는 대상의 변절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바로 증오라는 인간적인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태초의 에덴으로부터 시작된 남녀의 사랑인 "에로스(eros)" 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님께서 질문하신 부분인데 만들어진 에로스 즉, 결혼으로 완성된 남녀의 사랑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들으면 좋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가정이라는 최소 공동체 속에서 가장 귀중한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보다도 부부간의 관계입니다. 남녀 부부의 관계가 바로 되면 부모와의 관계도 귀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러나 부부라는 관계가 허물어지면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허물어지게 됩니다.
셋째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고 대부분의 짐승이 마치 자신의 새끼를 돌보는 보다 의무적이면서 천성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물론 부모 공경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효행적 사랑은 역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봅니다.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어머니의 장래를 위하여 부탁하는 모습입니다.(요19:27)
마지막으로는 붕우(朋友)적인 사랑인 우정의 관계를 강하게 결속시키는 "필로스(philos)" 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친구 관계뿐만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는 것(philosophy)'에도 함께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성경에 가장 대표적인 우정의 사랑을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로 보는데 나중에 다윗이 회고 하기를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삼하1:26) 라고 노래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에서 마지막까지의 3종류의 사랑조차도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할 때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 인생의 삶의 질을 변화시키는 큰 福이 됩니다.
남녀간의 이성적인 사랑에 대해서 질문을 주셨는데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사랑을 바탕으로 할 때 남녀의 관계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됩니다. 하나님이 제외된 너와 나는 생식본능과 욕정이 바탕이 되고 이것은 쉬이 식어지기 쉬운 사랑의 재료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보십시오.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을 때에는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창2:23) 고 감격했고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2:25) 고 허물과 가릴 것이 없는 관계였지만 하나님을 떠난 후의 관계는 "…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라는 식의 저 여자 때문에 내가 불행해졌다는 식의 투정을 듣게 됩니다.
성경에 한 여인을 위한 헌신적인 사랑을 야곱에게서 봅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같이 여겼'더라"(창29:20)
야곱은 나중에 7년을 더 채워서 사랑하는 라헬을 얻기 위하여 무려 14년을 종처럼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짝사랑에 대하여 물으셨는데 진실한 표현과 서로의 이상이 다를 경우는 배려하고 참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때 짝사랑의 가슴앓이 같은 고통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짝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죄악의 수렁에 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다면 그야말로 비극적인 짝사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엄청난 사랑의 신비를 다 적을 수 있겠습니까?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답변 감사...
이제야 뭔가 감이 잡힘을 느낍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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