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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 십일조에 대해 궁금한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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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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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제 질문에 대한 답변 정말 고마웠읍니다.
오늘은 십일조에 대한 저의 궁굼증을 풀어줬으면 합니다.
먼저 십일조에 대한 형평성문제입니다.
한달 수입이 60만원인 사람이 6만원을 십일조 하는 것과,
한달 수입1000만원인 사람이 100만원 십일조 하는 것이 같은지요?
물론 없는 돈을 쪼개어 십일조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귀할줄은 앎니다만, 그가 6만원의 십일조가 부담스러워 죄스럽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번째는 십일조를 교회가 아닌 주위의 불우한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어떤지요?
물론 교회의 재정이 어렵다거나 하면 다르지만,정말 많은 헌금이 들어오는 그런 교회에, 너무나 부유해지고 비만한 그런 교회보다
개척교회라든 아니면 선교단체 불우이웃등에 십일조를 나누는 것이
문제될수 있는 건가요?
물론, 개인의 의를 위한 것은 안되겠지요.
세번째는 다른 나라의 십일조에 대해 알고싶읍니다.
듣기론 다른 나라에선 십일조가 없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더불어, 성경상의 십일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읍니다.
항상 좋은 답변주시는 관리자님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것을 믿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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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3-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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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신앙의 모든 부분에서 진지한 님의 자세에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비슷하거나 관련된 질문과 답변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게시판 41~40번의 '헌금에 대하여...' 는 님의 질문과 상당히 유사성을 갖고 있습니다. 160번 'Re:연보에 관한 질문'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단 십일조는 복음 속에 주신 새 계명이 아니며 이스라엘과 맺은 옛 언약에 속합니다. 말라기서의 십일조 강조의 배경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자; 제사장들이 먹고 살기 위하여 일을 찾아 더러는 농사의 품을 팔고 그밖에도 생활비를 만들만한 일들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피폐해 지고 제사나 절기조차도 그냥 건너뛰는 바람에 하나님에 대한 의식 자체가 희미해져 버린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고 까지 명령하십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복을 좋아하는지는 부연하지 않아도 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강조하거나 내는 사람들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또 내는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하고 바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보다 근본적인 의미는 하나님과의 원만한 관계회복을 해야만 너희가 산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해서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시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저들은 집 주변의 나물을 심어먹는 것까지 십일조를 계산해서 바쳤지만 더 근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십일조도 연보도 할 필요가 없는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구약의 신앙의 명령은 언제나 '복 받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의무적이기보다는 사랑 받음과 은혜 받음에 대한 감사로서 모든 신앙의 행위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33:29)라고 확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된 사람'이라는 의미라는 것은 님께서도 잘 아실 겁니다. 이제는 우리의 생명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당연히 그분의 것이 되어야 옳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엄밀하게 개인 소유는 존재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목표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거나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3:17)는 바울 사도의 당부를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는 말씀을 역으로 이해하면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 즉, 물질이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는데 우리는 드리는 시간, 물질, 다 헤아리고 있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런 입장에서 누가복음 21:1~4의 과부의 두 렙돈이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그녀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경우의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60만원 일 때는 많지 않아서 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매월 수입이 1억이 되자 천만(千萬)원을 내는 것은 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왜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액수에 어려움이 없이 10%는 선교를 위하여 또 다른 10%는 구제를 위하여 등등으로 주님을 위해서 자신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이름보다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경우에 다른데서 말씀 드린 대로 교회를 통해서 해야 하는데 교회가 자신의 몸치장에만 물질을 쓴다면 역시 그것은 개선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십일조에 관한 명령이 없지만 주님께서 마태복음 23:23에서 십일조에 대하여 경계하신 다음에 말씀하신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는 마지막 말씀이 바로 십일조의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호소력이 약하다고 봅니다.
복음시대에 연보는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나라와 사명을 사랑한다면 사랑과 믿음의 고백을 물질을 통해서도 주님께 표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분명히 물질의 드림은 믿음이 있는 자 많이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님께서 염려하신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없는 돈을 쪼개어 십일조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 귀한 줄은 알지만, 그가 6만원의 십일조가 부담스러워 죄스럽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셨는데 믿음이 아직 자라지 못한 사람에게 물질을 드림의 부담으로 신앙에 장애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그의 삶으로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울 사도의 고백을 들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1~5)
저들의 형편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게 했다든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한 사실은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다는 고백 속에서 볼 때 연보는 풍족하거나 평안한 가운데서만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고 '자신을 주께 드린' 후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지루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무딘 연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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