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84 . 성경을 보는 차이점에 대해 |
|
|
질문 : |
|
성경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것인데,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한 모토는 너무나 모호한 주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외치는 사람들의 성서해석이 또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것이 기본적인 홈페이지의 내용인데, 제가 부족해서인지 잘 찾지를 못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의도는 좋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한계를 인식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한계를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하는 중대한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의 지나친 열심이 하나님의 정하신 경계를 침범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성경을 우리의 한계 안에 묶어 놓는 오류가 여기서도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선한 열심이 하나님께는 큰 죄가 될 수 있다'는 어떤 외침을 귀기울여야만 하겠습니다.
성서를 가르친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신학적인 틀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인위적인 교파나 교리를 무시한다는 취지는 동감하지만, 그러나 그러면서도 역시 동일한 발걸음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무결한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죄와 허물로 가득찬 벌레만도 못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상적인 틀이나 선입관이 전혀 없이 성서를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모임은 천사들만이 모이는 모임일 것이고, 만약에 아니라면 이 모임의 자기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해야만 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보다 앞서는 우리의 열심이 문제이니까요...
익명으로 하니까 저도 답답하고 정직하지못하네요.
왜냐하면 정체성을 묻는 분도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 엉뚱함을 보고 의아해서 해보았습니다.
미안합니다.
누구나 궁금하고 누구에게나 불분명함을 있을 수 있지요. 무엇도 확실하지는 아니하구요. 어차피 우리는 거울로 보는것 처럼 희미합니다.
존중과 애정, 인내와 포용,이해와 동행 그리고 협력의 아량으로 좀더 지켜보아 보면 어떨까요.
하나님 살아계시니 무엇이든 저 심은대로 거두지 않겠습니까?
결국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알게될 것이니....
각자가 자기에게 정직하면 될거구...
죄송합니다. |
|
|
|
답변 : 2003-05-12 |
|
솔직하신 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올려주신 글에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써주신 것을 읽고서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진지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진지한 마음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린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불편하셨나봅니다. 저의 의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고백하건대, 진리는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불분명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진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 관하여 결코 모호하지 않습니다.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진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하게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교리문제로 타협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랍니다. 도리어, 그 반대이지요~~^^ 즉, 우리는 일반적인 삶의 문제 속에서 말씀하신 정신을(존중과 애정, 인내와 포용...) 실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인 복음은 그러한 정신은 고수하되, 복음은 조금도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중과 애정과 인내와 포용이 아니라, 진리를 비진리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된 성서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실제적인 믿음의 삶 속에서 양보하고 손해보고 인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두가지 모두 정신은 같지요. 그러나, 나타나는 방법이 다릅니다.
제가 익명으로 비판적인 글을 올려서 많이 섭섭하셨나봐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고백하지만, 긍정적인 비판의 글을 올렸습니다. 올려주신 글처럼, 우리가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실수나 오류를 범하기가 쉽습니다. 때로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의 한계가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기도 하지요...
제가 다만 의도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신다고 성서는 가르치는데, 우리는 우리의 것을 가지고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성찰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한 노력이나 열심으로 주님을 위로하려는 이 엉뚱한 신앙형태의 안타까움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올려진 글들에서 제가 가장 인상깊게 접하는 내용들이 바로 열매로 나무를 안다는 성경구절의 인용입니다. 옳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치명적인 오해가 있는데요, 그것은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의 열매로 알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즉, 올려주신 글의 마지막 부분처럼, [각자가 자기에게 정직하면 될거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심각한 문제로 나타나게 될까요? 아래에 제가 어떤 글에 대하여 답변을 올린 것처럼, 올바른 자기성찰과 영혼구원의 기준이 성서에서 자기 자신으로 알게모르게 변질된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판단하는 주님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안타까움은 이것입니다. 성서는 옳습니다. 그러나, 나는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옳지 않은 내가 성서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서가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서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옳습니다. 그런데, 나의 해석이 그 진정한 의미와 참된 열매의 순결함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지요.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지만, 열매가 나무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거짓이나 모조열매로 충분히 나무흉내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가장 효과적인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받지 않았지만, 구원받은 것처럼 어떤 열매로 자신을 가릴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열매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열매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 탁월하신 은혜들을 대신하거나 가리는 용도로 오도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솔직하신 답글을 올려주셔서, 부족한 제가 이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
|
|
|
|
|
|
|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
|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