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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 구원의 3시제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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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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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3시제?
구원은 1.칭의구원(과거구원) 2.성화구원(현재구원) 3.영화구원(미래구원)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저의 교회에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순간 의롭다 칭함을 받아 칭의구원이 이루어지고, 현재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영화 구원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완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에 따른다면 현재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구원이 만들어진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구원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단회적으로 이루어짐으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그 무엇도 우리를 예수님에게서 끊을 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못된 생각인지요?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현재 예수님을 믿노라 해도, 말씀과 기도로 늘 거듭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구원을 완성시킬 수 없다고 합니다.
믿음에 열심을 내어 열매맺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상급이 쌓여지는 것이 아닌가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에 대한 논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시원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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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2003-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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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고민을 가지신 은경님의 믿음에 존경을 표합니다.
먼저 님께서 가지신 신앙의 3시제는 크게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된 구원의 은혜에 들어가는 첫 단계인 '믿음'이라고 하는 것에 구체적인 범위를 확실히 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쉽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복음을 듣고(롬10:17); ②그리스도를 믿고(요3:16, 요5:24); ③죄를 회개하고(행17:30-31,행26:20); ④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고백하고(롬10:10); ⑤세례를 받는(막16:16,행2:38)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구원받은 삶이 바로 신앙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벧후1:5-11)
이 두 가지의 단계를 이사야서1:18 말씀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①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②양털같이 되리라"
하신 것인데 여기에 '눈과 같이'와 '양털 같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각각 칭의(稱義; justification)와 성화(聖化; sanctification)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초청하시는데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의를 옷 입혀 주시고 그 다음에는 이제는 점점 하늘의 사람으로 변화를 거듭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눈이란 산천 초목이 그대로 있는데 하얗게 덮이는 원리로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를 입혀 주심으로 의롭다고 선언 해 주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3:27)는 稱義의 개념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믿고 회개하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므로 획득되는 稱義이고 '양털 같이'라는 의미는 양털은 눈과는 다르게 안에서부터 길어 나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聖化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稱義가 그리스도를 옷 입는 것이라면 聖化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 났다면 하늘의 성품으로 삶이 변화되어 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른 말로는 믿음의 성장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 개인에게 있어서 聖化는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30퍼센트(%)만 聖化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80%가 聖化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적게 聖化되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이유는 주님의 약속으로 확신을 갖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3) 몇 %가 聖化되었든지 주님의 재림의 순간에 100%로 하늘의 사람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어떤 선한 행위'라고 할지라도 구원을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만들어 간다는 말은 어패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다른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고난을 받아도 죄로 인한 고난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난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 상급에 관해서도 우리가 이 세상적인 기준에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쳐놓고 하나님을 위하여 믿음 생활한 사람과 신앙에 적극적이지 못한 사람의 구원에 대한 감동이 같겠습니까?
그리고 구원의 권한에 관한 한은 우리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불변하시는 약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순종하면 그것은 분명한 구원을 이룰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개인의 상태에 의해서 구원을 논한다면 얼마나 혼란하겠습니까? 열심히 하나님을 순종하는 삶을 살 때는 구원을 받은 것 같고, 신앙적인 감정이 약해 질 때는 구원을 잃은 것 같은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 속에 우리 사람들의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기준을 인간에게 맞추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약속에 두신 것에 우리는 감사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이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구원을 거둬 가시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에 따라서 구원을 주셨다가 빼앗았다가 한다면 죄인 된 우리가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의 기준을 자신의 약속 위에 두신 것입니다.
비록 모자라는 아들도 자식이고 뛰어나고 순종하는 딸도 자식인 것은 분명하지요? 순종을 잘 하는 자식은 기쁜 마음으로 사랑하고 말썽부리는 자식은 아픈 마음으로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견고합니다. 우리가 자녀이길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 밖의, 또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 육적인 것과 영적인 존재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약속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롬8:31~39)
우리가 세례를 받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에 일치됨으로(롬6:3~4) 이루어진 사죄의 은총은 두 번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매일 매일이 새로운 시작과 마무리일 것이고 그러한 신앙의 긴장을 가지고 주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인생과 역사의 마지막에 주님께서는 영화(榮化 Glorification)의 관을 씌워 주실 것입니다.
믿음에 견고하게 서서 흔들림이 없는 은경님께 주님의 평강을 기원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기쁘겠습니다.
같은 순례자인 주님의 무딘 연장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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