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무릇 그가 내 이름을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신 18:18-19)" 수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했습니다.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형식으로 예언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관하여 열띤 논쟁을 하도록 문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선지자' 및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고백했습니다(마 16:18). 이 선지자에 관해서는 모세가 기록한 바 있습니다(행 3:22).
'선지자'란 단어의 어원은 희랍어 "prophetees"입니다. 이것은 두 단어 즉 '내밀다'와 '들어내다'를 의미하는 pro-phaino의 복합어입니다. 따라서 선지자란 대체로 미래의 사건에 관한 진리를 "나타내고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후자의 뜻이 이 용어의 엄격한 어의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보든 참 선지자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완전한 해석을 가하는 자이기도 하셨습니다. 그의 윤리체계는 완전무결해서 거기에 비교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살고 죽는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가 회당에 들어가서 구약성경을 읽으셨을 때 그는 사람들에게 새롭고 보다 깊은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짙은 구름 사이로 뚫고 들어온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려는 것은 예수께서 미래의 사건을 취급하신 방법입니다.
앞장에서 우리는 성령의 약속에 관하여 충분히 공부했습니다. 이 문제를 되풀이 할 것 없습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예언적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또 하나의 약속 즉 예언은 하늘 왕국의 실현입니다. 이것도 이미 취급했습니다. 그 예언의 성취에 관해서 긴 설명을 드렸습니다. 비유의 장에서 교회와 왕국은 동일한 실재에 대한 다른 명칭임을 지적했습니다. 예수가 죽으시기 약 6개월 전에 즉 그가 변화하시기 한 주일 전에 베드로는 그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듣고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 예언을 찾아봅니다.
① 예수는 곧 그의 교회를 세우려고 하십니다. ② 베드로는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게 될 것입니다. ③ 지옥의 권세도 이를 주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예수가 그의 교회를 세우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다음 첫 번 오순절에 베드로가 그의 왕국 열쇠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똑같이 명백합니다. 지옥문이 그의 교회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감히 반박할 수 있는 자도 없었습니다.
이제 그가 장차 배신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에 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지 며칠 후, 그들이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7:22). 이런 일이 있기 약 6개월 전에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의미했습니다. 다시 요한은 "예수께서 처음부터 자기를 배신할 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셨다"는 사실을 일러 줍니다(요 6:70-71). 성경은 예수의 예언적 통찰력을 밝히 보여주지만 운명론적 예정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잡히시던 날 밤, 그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베풀고 계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저희가 심히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마 26:21-25)" 몇 시간 후 유다가 병정들을 데리고 왔을 때 예수는 비탄에 빠져서 풀이 죽어 있는 제자들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마 26:46)"고 하시면서 일어나 그를 만나러 가셨습니다. "이 사실을 감지하기 위해서 예언적 통찰이 필요할 것까지는 없지만 머리가 영민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때 우리는 열 한 명의 제자들 가운데 이 사실을 미리 감지한 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유다의 책략을 예수가 발견하신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것도 열두 달 전에 혹은 마가와 마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대로 여섯 달 전에 이미 예수께서 이 문제에 대하여 예언하셨다는 사실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를 못합니다(마 16:21, 막 8:31).
예수가 잡히시던 날 밤에 또 하나의 예언을 하셨습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다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 26:31)" 이 예언은 너무도 명백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제자들 중 어떤 자는 집으로 돌아가고 혹은 그들의 장사를 계속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하던 세 제자들마저 그들의 어업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요 21:3).
예수가 그들의 배신행위를 미리 경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단호하게 그의 결심을 이야기 했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여기서 우리는 더 놀라운 주님의 예언을 듣게 됩니다.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더욱 격렬하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면 다가오는 위기를 목전에 두고 제자들이 선택할 행위에 대하여 예수는 어떻게 예언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애초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이 예언에 대하여 가장 흥미로운 일은 용맹스럽고 대담했던 베드로가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이나 그를 부인하였다는 사실입니다(막 14:66-72).
예수가 공적 활동을 시작하신 첫 해, 갈릴리에서 그의 사업을 시작하시기 전에 자기의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18,20)" 사람들은 이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장차 죽게 될 것을 미리 아셨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 줍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있은 후에 그는 자기가 당하실 죽음의 '방법'을 일러 주셨습니다. 마태는 말합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 다시 북쪽 지방의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어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막 9:31)" 갈릴리를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무리들로부터 열 두 제자를 따로 모아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 우매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막 10:33,34)" 예수가 죽게 되는 상황을 자신이 설명하신 것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예수의 경이로운 말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그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준엄하게 책망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성전을 떠나셨습니다. 떠나려고 할 때 제자들은 그에게 와서 성전의 건물을 찬탄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유대인들은 이 건물을 짓는데 46년이 걸렸습니다. 성전의 장려한 모습에 찬탄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는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제자들은 마음속에 이것을 세상의 종말과 연관시키지 않고서는 이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의 파괴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1))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2))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3)) 당신이 오실 때의 징조는 어떠하오며 4)) 세상의 종말이 오면 무슨 징조가 있겠나이까?" 이 질문에 예수는 먼저 제기한 두 가지 질문만 답변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전자의 두 가지의 질문과 후자의 두 가지 질문이 서로 혼란을 가져오지 않게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과 그 때의 징조에 대하여 분명한 이해를 갖고 싶어 한다면 다음의 성구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마 24:4-28), (막 13:5-23), (눅 21:5-36).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그가 말씀하신 강론의 나머지 부분은 그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에 대한 언급입니다. 아직도 실현되지 아니한 그의 예언은 그만 취급합니다. 이미 역사적 사건으로 실현된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한 주님의 강론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것이 만일 성공적으로 논증 된다면 그 나머지는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가 말씀하신 첫 번째 징조는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며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많은'이라고 하는 용어는 상대적인 숫자입니다. 임의로 그 수를 정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의 징조는 "너희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으리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체험입니다. 가이사가 자신의 초상을 예루살렘 성전에 안치하도록 명령했을 때(주후 41년) 유대인들은 그것을 반대했습니다. 양보하지 않으면 유대인들을 전멸해 버리겠다는 위협을 받았지만 더욱 강경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세 번째 징조는 이러합니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제 조목마다 하나씩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여기 '지진'이란 단어의 어원을 살펴볼 때 예수께서 축어적인 의미에서 땅이 흔들리는 지진을 가리키셨는지 혹은 정변 따위를 의미하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연구 과제로서는 그것이 어느 쪽을 의미하든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이 단어의 축어적인 의미를 보면 예수가 지시하신 때에 수많은 지진이 발생했었다고 하는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주후 46,47년경 글라우디오의 통치 기간에 구레데에서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타시터스는 네로 당시에 로마에서 일어난 지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네카는 캄파니야에서 지진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세퍼스는 유대에서 일어난 지진을 묘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밤중에 폭풍우가 천둥, 번개와 함께 일어났다. 그리고 땅이 울리더니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진이었다(전쟁 4권 4장)" 서머나, 기오스, 사모스, 라오디기아, 히포리스, 골로새 등지에서도 지진이 일어났다고 하는 사적 자료가 있습니다.
2. 예수가 예언하신 때부터 주후 70년 사이에 수많은 기근이 발생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와 로마의 비신자들이 다함께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조세퍼스, 타시터스, 수에토니어스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누가는 글라우디오 때에 생긴 흉년을 기록했습니다(행 11:28). 바울은 이 때에 팔레스틴의 동족을 구제할 목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에 산재해 있는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특별 연보를 모았습니다(고전 16:1-4).
3. 기근과 전쟁은 대체로 악질을 수반합니다. 전쟁과 기근은 예외 없이 흑사병,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의 고질병을 가져와서 수많은 희생자를 생기게 합니다. 이 경우 예수의 말씀이 진리임은 과학적으로도 논증됩니다. 맥가비는 이 당시에 로마에서만도 3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악질 병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4. '하늘에서 오는 징조'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예수는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조세퍼스가 이에 관해서 수많은 현상을 열거해 주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장차 주어질 황폐를 명백히 예고해 주는 징조에 대하여 백성들은 아무런 신뢰나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타시터스도 조세퍼스가 말하고 있는 이러한 징조에 대하여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예수가 그의 사도들에 관하여 직접 말씀하신 예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또 여기에 예수가 말씀하신 예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흥미를 가져다줍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예수가 이처럼 확언하신 것은 세 번째가 됩니다. 한갓 인간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진리성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논증이 되었습니다. 그 뚜렷한 실례를 사도행전 4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에게 담대히 말하니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의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바울이 아그립바 왕의 면전에서 너무나 유창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자기변명을 하였으므로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고 했습니다(행 26:24,25). 우리는 또한 스데반의 경우를 들 수가 있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공회 앞에서 놀라운 강론을 하였습니다(행 7). 그의 어조는 너무나 신랄해서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위에 인용된 두 개의 예언 사이에 예수가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는 말씀을 삽입하셨다는 것이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오기 전에 모든 나라 백성에게 먼저 복음이 전파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후 63년에 바울은 "하늘 밑에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골 1:23). 예수와 바울은 그 당시에 알려져 있었던 인간의 거주 지역을 각자 마음속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에(환난이 너희에게 임할 때)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로마의 사가들에 의해서 우리는 믿음에 뿌리박지 못한 초대 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그들의 동료들을 밀고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다시 말씀을 계속하십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베드로와 바울과 유다는 이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도 여전히 종적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대격변이 있은 후에도 활동하고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습니다. 진실로 교회가 설립된 이래 오늘까지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어디서나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도성의 포위와 함락 사건을 고찰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베스파시안은 로마의 황제였고 그의 아들 디도는 자기가 누구보다도 총애하는 장군이었습니다. 이 장군이 삼년동안 포위한 끝에 주후 8년 10월에 드디어 이 도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누가에 의하면 예수는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것을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표현하셨다고 합니다. 즉 멸망을 초래한 가증한 것이란 뜻입니다. 이러한 징조가 있을 때에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급히 산으로 피난할 것과 그들의 소유를 전부 내버리고 갈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로마 군대가 그들의 거주 지역을 예기치 아니한 때에 급습할 뿐만 아니라 그 군대의 수가 너무나 많았으므로 그들의 피난이 쉽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또 그는 이러한 일이 겨울에 생기지 않도록 기도드릴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겨울에 피난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참으로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무서운 재난을 다음과 같이 예고하실 때 예수가 우셨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 23:37-39)" 그는 발길을 돌려서 성전을 떠나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다시 찾아보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처음에 예수가 말씀하신 주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자랑스럽게 성전 건물을 가리키면서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라고 말하였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조세퍼스는 "그 요새의 견고함과 그 도성의 번영을 보여주기 위해서 남겨진 서쪽 성벽과 세 개의 첨탑을 제외하고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건물이 너무도 철저하게 파괴되었으므로, 이 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믿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다"고 기록을 했습니다(전쟁 7권 1장).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이 이 성벽을 찾아와서 그것을 울음의 벽(통곡의 벽)이라고 부를 뿐 아니라 실제로 울기까지 하는 것은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여기에 대하여 충분한 이유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예언을 낱낱이 살펴 볼 때 우리는 "이가 참으로 그 선지자라"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요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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