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실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사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열성적으로 했습니다. 그는 복음에 순종한 뒤에 곧 그 자신이 파괴하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 공과에서는 사울이 교회를 위해 수고하기 시작하는 초기의 사업들부터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사울의 개종과 그 후 사울이 다메섹에서 개종한 후 주의 제자들과 얼마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그리스도께서 한 위대한 지도자이시며 훌륭한 스승이시라고만 알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신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달은 사울은 자기가 믿고 아는 바 그대로를 청중에게 설복시키려고 했습니다. 다메섹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사울의 설교를 들으면서 했던 다음과 같은 물음을 보면 그들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핍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더욱 열심히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함으로써 다메섹에 사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설복시켰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더니" 여기에서 우리들은 이 사건은 사울이 개종한 후 불과 수 주일이 지나서 일어난 것 같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사건은 사울이 개종한 후 3년의 세월이 지난 뒤에 일어난 일일 것이라고 추측됩니다(갈 1:17-18)
사울이 무엇 때문에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보통 이 문제에 대해서 사울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로 형성된 관계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위해서 그 곳에 갔었다고 일반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사울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하게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의 아라비아의 생활을 통하여 그가 일생 동안 선교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준비를 갖추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사울은 자기 생명을 위협하는 함정에서 빠져 나와야만 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은 사울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성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제자들에게 알려지자 저들은 사울을 설득했습니다. 광주리에 사울을 태워서 성 밖으로 달아내려 보냄으로써 사울을 그 성에서 빠져 나가게 만든 것입니다.
고대의 도시들은 거의 모두가 성 안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대개 집들은 성벽에 붙어서 성을 등지고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뒤 창문이나 또는 지붕 꼭대기를 통해서 성 밖으로 도피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자신이 체험했던 이 사실을 자세히 기록했습니다(고후 11:32-33).
사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가 다소로 보냄 받음 (행 9:26-30)
사울이 3년간의 은거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귀려고 노력했습니다. 제자들은 사울이 개종한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와 교제하기를 두렵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아마 저들은 사울이 형제처럼 교제하는 척하면서 말과 행동에 이상한 점이 있을 때에는 즉시 그들을 감옥에 가둬서 죽일 계획을 지니고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제자들은 분명히 사울이 개종했는가를 의심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울의 손에 의하여 형제들이 박해를 당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바나바는 사울이 진심으로 개종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사울을 사도들한테 데리고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이야기하여 소개했습니다. 이 때에야 비로소 온 교회가 사울이 저들과 같은 한 형제가 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이처럼 잠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그는 사도 베드로와 함께 거처를 같이했을 것입니다(갈 1:18).
사울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질문을 주고받을 때입니다. 그들은 사울이 담대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함을 깨달았습니다. 스데반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저들은 사울과 변론하여 이겨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즉 저들의 변호의 수단은 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음모를 알게 된 형제들은 사울을 구하고자 가이사랴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습니다. 수년 후 사울은 이런 일 당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습니다(행 22:18-21). 다소는 사울이 출생한 고향 땅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전도활동: 룻다에 옴 (행 9:31-35)
사울의 회심과 활동으로부터 베드로의 선교 활동으로 펜을 옮기면서 저자 누가는 기록하기를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의 온 지방을 두루 다니며 전도하다가 룻다라고 하는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이 도시는 욥바에서 12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룻다에서 베드로는 여러 형제들을 만났습니다. 저들은 아마 예루살렘에서 처음 교회가 시작될 무렵에 개종했을 듯한(행 8:40) 형제들이었습니다.
룻다에서 베드로는 애니아라고 하는 8년 동안 중풍 병으로 반신불수 된 자를 만났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애니아는 곧 일어났습니다. 이 경우에 사도 베드로는 자신에게 병 고치는 능력이 있음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권능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적의 결과는 다음의 짧은 구절에 완전하게 나타났습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베드로가 욥바로 부름을 받음 (행 9:36-43)
욥바라는 지방에 아주 착한 여자 신도가 있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 여자에 대해선 별로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결혼한 여자였는지 과부였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은 "선 행함과 구제하는 일"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여자로서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자신의 모든 감정의 욕구를 억제했을 것입니다. 도르가라고 부른 이 여인의 시체는 장례식을 위해 준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층 다락방에 눕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 간청하니"
무슨 이유로 욥바의 형제들이 베드로를 청하러 룻다에 사람을 보냈는지에 대해서 저자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저들이 애니아에 관한 이적을 들어서 알기 때문에 도르가도 다시 살릴 수 있는 베드로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또는 도르가를 장례하는데 그가 와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특히 사도인 그가 와서 슬퍼하는 형제들을 위로함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기로는 욥바의 형제들이 이와 같이 베드로를 청한 것은 도르가를 다시 살려 주기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르가는 이미 세상에서 보람 있는 생활을 하였던 것입니다. 스데반도 다시 살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므로 욥바의 형제들은 베드로를 청하여서 위로를 받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이르렀을 때 도르가에 대한 슬픈 사연을 들었습니다. 과부들은 도르가가 생전에 손수 지어서 준 옷과 물건들을 베드로에게 내어 보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위대한 일생을 보낸 도르가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도르가는 이기주의적인 생활을 초월하여 타인을 위해서 봉사하는 경건한 종교인의 생활을 했습니다. 야고보는 말하기를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고 했습니다. 도르가의 삶은 이 구절의 산 본보기였습니다.
베드로는 도르가의 시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식은 손을 잡고 "다비다야, 일어나라"하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서 그 여자는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 여자는 죽음으로부터 소생하였습니다. 죽었던 옛 친구와의 재회라고 하는 엄연한 사실의 기쁨이 얼마나 그들에게 컸겠느냐 하는 것은 저자 자신도 표현할 수 없었겠지만, 기록이 없다 해도 그 감격된 장면은 우리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입니다. 누가는 이 이적의 결과를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적의 목적은 믿게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요 20:30-31). 베드로는 욥바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수일을 더 머무르면서 전도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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