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로 인하여 이리 저리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습니다(행 8:4).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의 선교 사업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을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함으로 많은 무리가 믿고 주께로 돌아오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셨던 것은 주의 손이 저들과 함께 하심이라는 말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안디옥에서 복음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누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①믿고 ②주께로 돌아 오니라"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의 '돌아오다'란 말은 '믿는다'와는 구별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제 3과 (행 3:19) 비교).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을 때 형제들은 매우 흥미 있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안디옥 교인들이 주께 집착해 있음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옴 저자는 어떠한 이유로 바나바가 다소로 내려갔었는가 하는 충분한 이유를 제시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여튼 바나바는 다소로 가서 그 곳에서 사울을 만나 그를 데리고 안디옥으로 와서 일년 동안을 같이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더라"(행 11:26)
누가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을 굴욕적으로 부르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일만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 안에는 주의 제자들을 치욕적으로 표현했다고 볼만한 뜻이 내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명칭은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제자들에게 부여된 명칭으로 봄이 더욱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다른 몇 곳의 성경 구절도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은 신적 권위에 대한 아름답고 명예스러운 명칭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합니다(벧전 4:16).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들은 아그립바는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 26:28)" 했음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 영광스러운 이름 하나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명칭 외에 더 다른 이름을 얻고자 할 필요가 없습니다(고전 1:10-13).
흉년에 대한 예언과 구제 사업 아가보라고 하는 선지자가 안디옥에서 예루살렘으로 와서 큰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마침 그 예언대로 유대 지방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대 지방의 형제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구제금은 "장로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장로들이라는 말이나 감독들이라는 말은 같은 뜻에서 같은 직책의 사람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17,28과 디도서 1:5,7에 이 두 말이 서로 혼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각 교회는 장로들, 감독들이 있으나 우리는 한 교회 안에서 장로나 또 감독 어느 한 사람이 그 교회를 다스리고 있는 사실을 성경 안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장로들은 교회를 관리하는 직책을 지니고 있습니다(벧전 5:1-3). 그러므로 안디옥 교회의 장로들이 구제금을 예루살렘 교회 장로들의 손에 전달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야고보의 순교 (행 12:1,2)
이 때까지 교회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에 의하여 박해를 받아 왔었습니다. 정치적인 면으로도 번져서 헤롯왕이 직접 교회를 핍박하는데 손을 댄 것이 나타납니다. 헤롯 왕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근절하려는 정책을 썼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의 손에 의하여 처음 칼로 목배임을 당했습니다. 야고보는 사도의 한 사람이었으며 특히 베드로나 요한과 항상 동반된 자였습니다(마 17:1, 막 5:37, 9:2, 눅 8:51).
인간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경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안 되어서 사도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큰 잘못이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실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사 55:8,9).
베드로의 투옥과 구조(행 12:3-11)
헤롯왕은 유대인들 편이 되어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는 정직한 정치가가 되려는 것보다는 백성들로 하여금 인기를 얻으려고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헤롯은 야곱을 죽인 다음 제 2차적으로 사도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고 유대인들이 기뻐 즐기는 유월절이 오기를 기다려서 그 때에 목숨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헤롯왕은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도망칠 수 없도록 군인 네 사람이 편을 짜서 옥문을 엄히 지키게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각 편의 근무 시간은 시간마다 교대하였습니다. 두 군인은 쇠고랑을 차고 있는 베드로의 옆에 있었고, 또 다른 두 군인은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계략이 있다 해도 도저히 옥문을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은 베드로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기적적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저들은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능치 못함이 없으신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생사 문제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저들은 야고보가 순교 당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베드로가 믿음이 약해져서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을 것입니다(마 26:69-75). 그러므로 저들은 아마 베드로가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서게 되든지 믿음에 큰 담력을 가지고 스데반이나 야고보처럼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도록 기도했을 지도 모릅니다.
한편 베드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라든가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구조될 것이라는 초조한 기대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평안히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자 천사를 보내어 잠자고 있는 사도 베드로를 불러 깨워서 기적적으로 감옥을 탈출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의 탈출은 너무나 뜻밖이어서 베드로 자신도 처음에는 어떤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자신이 당한 일이 어떤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를 악한 헤롯왕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남 (행 12:12-19)
베드로는 옥에서 빠져나와 곧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리아는 바울과 바나바가 첫 번째 전도 여행을 떠날 때 동행했던 마가 요한의 어머니입니다(행 13:5). 교회가 많은 사람으로 늘어감에 따라 예루살렘 안의 여러 곳에서 저들이 모임을 가지게 되었었습니다. 아마 마리아의 집도 이와 같이 그리스인들이 모이는 장소의 하나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곳에서 자기가 어떻게 하여 헤롯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는가를 형제들에게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가 어디로 갔었는가 하는 기록은 없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행방을 알리지 않고 떠난 것은 후에 관리들이 찾아와서 "베드로가 어디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알지 못한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대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었는지는 모릅니다. 날이 밝자 하나님의 종을 놓친 감옥소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를 놓침으로 인해서 자기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된 헤롯왕의 분노가 어떠했는가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헤롯은 베드로의 옥을 지키던 군사들을 끌어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일 옥문을 지키던 군사가 취조를 받았다고 한다면 저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밤을 새워 그 옥문을 지키며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이 곳에 온 일이 없었습니다" 라고 했을 것입니다. 옥문 열쇠를 보관했던 사람을 불러서 심문 했다고 해도 그는 정직하게 누구에게도 열쇠를 빌려준 일이 없었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옥의 바깥문과 감방 사이에 배치되었던 두 병사를 불러 물어보았다면 어제 저들 앞에 통과한 사람은 절대로 아무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옆을 지키던 두 군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옆에 있던 사람이 없어졌다고 했을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위에 말한 바와 같은 보고를 했다면 기적적인 사실이 아니고는 결코 실제적인 사실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그 때 헤롯은 기적적으로 베드로가 옥에서 빠져 나갔다던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모든 부하들이 공모해서 베드로를 놓아 주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했음이 분명했을 것입니다.
헤롯왕의 죽음 (행 12:20-23)
저자는 헤롯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시 111:9), (마 23:9), (히 12:28,29).
사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돌아옴 (행 12:24,25)
사울과 바나바는 기근으로 인하려 고생하는 유대 지역의 가난한 형제들을 보조하려는 안디옥 교회의 기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갔었습니다(행 11:27-30). 이 일을 끝마치고 두 사람이 안디옥으로 돌아올 때 요한을 데리고 왔습니다. 마가는 복음 안에서 베드로의 아들(벧전 5:13)이며 마가복음을 기록한 저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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