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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1차 전도 여행
  연구과 (사도행전) - 17 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 실천한 사실들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지난 공과 둘째 부분에서 우리는 바울의 제 1차 전도여행에서 되어진 일들을 공부하는 중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으로 떠난 부분까지 공부했습니다. 다시 우리들은 바울과 함께 여행을 해봅시다.

이고니온에서 생긴 일들 (행 14:1-7)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쫓김을 받았습니다. 저들은 발길을 동쪽으로 옮겨서 이고니온으로 왔습니다. 이 곳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많은 수의 신자들을 얻었습니다. 저들의 설교는 교리적인 면에서 율법보다 더 우월했고 저들의 증거는 의심 없이 신임할 수 있는 사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고니온에서도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그 지방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어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어떤 유대인들은 거절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는 저들은 하나님의 전도자들의 적수들이 되었습니다.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마음에 독소를 넣어준 결과처럼 되어서 저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군들은 저들의 반대를 받아가면서도 그 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는가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습니다. 사도들이 전도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이적을 행케 하는 능력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이런 일들로써 저들의 선교에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후 이고니온의 주민들은 믿지 않는 유대인을 추종하는 자들과 사도들을 추종하는 자들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반대하는 자들이 사도들을 돌로 치려고 하므로 저들은 그곳을 빠져나와 생명의 위험을 면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의 전도와 그 결과 (행 14:8-20)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동남쪽으로 약 40마일 떨어진 곳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 결과는 바울의 일행이 예기치 못했던 난처한 입장을 초래했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바울의 전도를 듣고 있을 때 바울은 구원 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줄 알고 "네 발로 일어서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즉시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하던 이 앉은뱅이는 스스로 일어나서 걷고 뛰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기적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이 기적을 목격한 루스드라의 사람들은 저들이 섬기는 신들 가운데 두 신(神)이 사람의 모양을 하고서 저들에게 나타난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두 전도자가 신들이라고 하는 확신이 생겨지자 저들은 아마 어떠한 신들일까 하는데 의견을 모았을 것입니다. 두 전도자 가운데 한 사람은 저들 신전의 문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수호신 제우스가 아니면 누구랴?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제우스신의 통역자이며 웅변의 신인 헤르메스가 아니고 누구랴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루스드라 시민들은 곧 소를 끌고 와서 바울과 바나바 앞에서 제사를 드릴 준비를 했습니다. 사도들은 자기의 옷을 찢으면서 대중들을 향하여 "여러분들이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들이라(행 10:26을 읽어 보십시오)"고 소리쳤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도 종종 사람들은 전도자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전도자는 보통 사람들보다 특별한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자라고 해서 결코 다른 그리스도인보다 더 위대한 성정을 지닌 것이 아닙니다. 더 높은 위치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벧전 2:5,9). 만일 전도자가 보통 그리스도인들보다 훌륭하다면 그가 저들보다 더 주님 말씀에 순종하며 경건한 생활을 실천할 때입니다. 이 점을 벗어나서는 전도자가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을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루스드라 시민들이 자기들에게 제사(예배)지내려고 하는 일들을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인간이 인간에게 경배를 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론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하여 인간인 예수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땅히 인간들에게 경배를 받으실 자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도마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29, 마 14:33, 요 9:35-38))"라고 한 것을 읽어 보십시오. 만일 그리스도가 신성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인간들에게 있어서 경배의 대상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저들은 루스드라의 시민들이 생명이 없는 우상들(쓰스와 헤메)을 떠나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전도하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저들이 신이 아님을 입증하는데 힘을 다했습니다. 그 반면 저들에게 자기들은 하나님의 참된 일군들임을 과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의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고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존재를 증거하지 않으시나 자신이 만드신 만물을 통해서 자신이 존재함을 입증하시는 것입니다((시 19:1, 롬 1:20을 읽어 보십시오).

얼마 후에 하나님의 종들을 반대하는 유대인 무리들이 이고니온과 안디옥에서부터 공모를 하고 루스드라로 왔습니다. 아마 루스드라 시민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과 같이 섬기려던 것이 좌절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들 유대인들의 악의(惡意)는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도 해로운 일을 하지 아니한 이 두 사람을 해치기 위하여 안디옥에서 온 사람들은 130마일을, 이고니온에서 온 자들은 40마일이란 먼 길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들이 와서 루스드라 시민들을 충동시키는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마 저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들이 우리들과 같은 지방 사람인 이 두 사람을 신으로 착각을 하고 경배하려던 일을 들었다. 우리들은 이 두 사람의 정체를 알려줄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유대인으로서 안디옥에 와서 그곳의 주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비겁한 일을 했으며 그 이유로서 안디옥의 관리들과 부녀자들에게 축출을 당한 자들이다. 이들이 이고니온에 와서 또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도 역시 돌에 맞을 뻔 하고 쫓겨나서 지금 이곳에 몰려온 것이다. 우리는 이 이상 이들이 모국을 모독하고 민족을 수치스럽게 하는 일을 묵과할 수 없어서 여러분들의 허락을 받아 이 거짓 마술사를 없애려고 왔다. 또한 저들의 마술은 악령의 힘에 의한 것이다. 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를 쉽게 들은 루스드라 사람들은 저들의 말도 쉽게 믿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무리들은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저들이 바울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버렸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 얼마나 오랫동안 둘러섰는지, 또는 어떤 생각들이 오고 갔었는지는 제시된 내용이 없음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한 가지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저들이 바울을 둘러서서 보고 있다가 그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들이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었던 상태에서 깨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계속하여 전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루스드라에서 된 일은 인간들의 불확실성을 명확히 입증합니다. 처음엔 루스드라의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신처럼 경배하려고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바울이 죽었으리라고 생각될 때까지 돌을 던졌습니다.

대중의 공적 의견이라 할지라도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인간이 제정한 교리나 신조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이상으로 좋을 수 없는 것입니다.

더베에서의 성공적 전도와 안디옥으로 돌아옴 (행 14:21-28)
루스드라에서 소환을 받고 떠나온 바울과 바나바가 더베로 왔을 때 그 감상이 어떠했겠습니까? 과연 저들이 이곳에서도 다른 지역에서와 꼭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할 것인가?
그런데 저들은 이곳에서 박해를 받는 대신 그리스도의 교회의 진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성공적으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더베는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바울이 개종한 이래 복음 전도 사업을 하는 중 그가 이르는 도시마다 박해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인간적으로 자기 고향인 다소를 방문하여 친척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성도들의 신앙을 견고케 해 주려고 저들이 다녀왔던 곳을 다시 방문하며 귀로에 오를 것을 작정했었습니다.

전도자의 책임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후에는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마 28:20).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하신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해야 할 의무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지들을 다시 방문한 사실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저들을 가르치며 모든 것을 돌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확신은 사람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구원을 얻은 자가 된 뒤에 있는 것이지 교회원이 되기 전의 준비 단계에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결심이 생긴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에게 계속적으로 저들의 신앙에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와 장로가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23절)" 여기서 '장로들'이라고 한 말에 주의하여야 합니다. 여러 사람의 장로들을 각 교회마다 두었지 한 사람의 장로를 둔 것은 아닙니다. 한 사람의 장로(감독)가 여러 교회의 장로들을 관리하는 교회의 행정도 성경의 교훈에 저촉되는 것입니다. 장로로서 선택 받아 일할 수 있는 자격은 (디모데전서 3:1-7)과 (디도서 1:5-9)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점에 대해서도 공부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대한 전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저들의 전도 여행 결과로 새로 세워진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며 저들의 신앙을 격려한 후 안디옥(수리아)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일하신 모든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사실상 이 겸손한 두 전도자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일을 했다고 했습니다. 즉 저들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는 하나의 도구로서 활동했었음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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