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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부활(2)
  연구과 (예수의 생애와 교훈) - 18 과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사도행전 17:3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세 가지의 확고부동한 사실에 의해서 증명됩니다. 그것은 하나의 감각적인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사실을 각각 살펴보겠습니다.

Ⅰ. 감각적 사실이란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에 의해서 증명이 된 사실을 의미합니다. 예수가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도 지극히 감각적인 사실입니다. 그는 실제로 사도들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처음에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셨고 다음에는 두 제자에게, 또 그 다음에는 열 명의 택하신 제자들에게 그리고는 모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500명의 증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그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특별한 명령 즉 그들이 "위에서부터 권능으로 옷 입히울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또 그가 보좌에 않으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방언을 하며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행케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받은 권위의 신임장입니다. 그들은 새로 보좌에 않으신 왕에게서 직접 사명을 위임받은 까닭에 확신과 위엄을 갖고 그들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결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위협을 당하고 형벌을 받기도 하며 때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했으나 한 번도 그들의 뜨거운 정열이 식거나 자기가 하는 사업에 대하여 회의를 품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또 그에게서 직접 사명을 위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더욱 그들은 자기들의 권위에 대하여 사람들이 질문할 때에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감각적 사실'의 뜻입니다. 이것은 어떠한 법정이나 심문관 앞에서도 논증할 수 있는 사실들입니다. 우리는 백일몽 환자에게서나 볼 수 있는 어떤 가상적인 환각을 여기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감각적 사실'이란 '합리적 사실' 즉 불가능하거나 비이성적이 아닌 사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넘어 설 수 없는 한계선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초월해 있는 다른 한계선을 또 보게 됩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우리는 시인치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내세의 삶을 믿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은 시체를 미라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영혼이 다시 돌아와서 그들을 소생케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희랍인들은 스틱스의 신비한 강에 대하여 흔히 이야기했습니다. 이 강은 떠나간 영혼의 안식처가 되는 하데스를 모든 인간들의 세계로부터 분리시킨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이 지어낸 최고의 문학 작품들은 대개가 내세의 인간상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버질의 예네이드가 있습니다. 앗시리아와 갈데아인들은 무덤 저편에 있는 삶을 모색했습니다. 이러한 관념은 가나안에서 일곱 족속이 쫓겨 나오기 전까지 깊이 뿌리박혀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의 별이 나타나기 15세기 전에 욥은 이렇게 추리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나니 찍힐찌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발하여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이러한 추리로 미루어 보건데 그는 인간이 죽은 후에도 소망이 있다고 믿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욥 14:7-15)" 비록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부활을 나타내시지 않았으나 그의 소망은 사리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후에 솔로몬은 무덤 저편에 있는 부활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어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어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어지고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전 12:6-7)" 이로부터 거의 500년이 지나간 후에 다니엘은 내세의 삶과 부활에 대한 신앙을 담대히 고백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부활에 대한 신앙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경 저자들 중에서도 바울은 부활 신앙을 가장 많이 강조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 편지에서 그는 부활 신앙을 강력히 변호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열거한 다음에 그는 다음과 같이 변론했습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당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전 15:35-44)"
바울이 아그립바왕에게 질문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

우리 앞에 제시된 논증들은 확고부동할 뿐 아니라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첫 번째 주장은 입증이 된 셈입니다. ① 그것은 가능합니다. ② 그것은 합리적인 사건입니다. ③ 그것은 사람의 감관을 통해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하나의 감각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Ⅱ. 우리의 전제를 증명하는 두 번째 설명이 앞장에서 충분히 주어졌습니다만 여기서 또 한 번 그 설명을 검토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적어도 20여명의 목격자들에 의해서 증명이 됩니다. 가끔 회의론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했다는 증인들은 모두가 예수의 추종자들이다. 타시터스나, 요세퍼스, 혹은 필로와 같이 예수를 신봉하지 않는 자들의 증언을 우리가 들을 수 있다면 부활 사건을 믿겠다" 이처럼 불합리한 이야기를 하는 자들은 성실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생각은 부조리합니다.

이들 유대교와 이교를 믿는 저자들이 예수의 부활 사건을 증언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시인하면서도 여전히 신앙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다면 위선적이요 진실하지 못한 자들임을 증명합니다. 집안에서 "불이야! 불이야!"하고 외치면서 소화 작업을 위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면 누가 그의 말을 진정으로 신뢰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의 부활을 목격했다면 그들의 언행은 표리가 부동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가 그리스도 되심을 시인하는 자는 누구나 그의 친구가 될 뿐 아니라 다른 형태의 신앙과 종교를 즉시 포기해 버리기 마련입니다.

예수의 벗들이 그의 생애를 기록하고 그의 부활을 증언했다고 해서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자기 원수의 전기를 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어느 인간의 생애를 면밀히 관찰해 보고자 한다면 그 인간의 친구들로부터 자료를 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세퍼스와 타시터스는 예수가 승천하신 후에 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의 부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예수 당시의 인물들보다 그들의 증언에 더 큰 비중을 부여할 까닭이 있을까요? 우리는 잠시 사도행전 2장의 기록을 살펴 봅시다. 때는 예수의 승천 열흘 후입니다. 장소는 예루살렘, 불과 두 달 전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곳입니다. 그 날은 국가적으로 종교 행사를 지내는 오순절이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과 꼭 마찬가지로 이 날도 사방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거기에 운집한 군중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에 모였던 사람들입니다. 무리들에게 예수의 죽음을 충동했던 대제사장, 장로 및 여러 지도자들이 이 날의 종교 의식을 집행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9시경 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성령이 임재 하셨습니다. 무리들이 이 소리를 듣고 급히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는 무리들이 출생한 각국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는 사도들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무리들이 진정하자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를 따라서 청중들의 범죄 행위를 지적하고 또 예수의 놀라운 행적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그를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대로 내어 준바 된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계속합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구약성경에서 이러한 사실들의 증거를 제시한 후에 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22-32)"

이제 예수의 부활을 하나의 허위로서 가정해 봅시다. 베드로와 그밖에 다른 사도들이 그들의 스승을 못 박아 죽인 바로 그 도성에서 그의 부활을 증거할 뿐 아니라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을 견책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예수의 피가 아직도 손에 묻어있는 3,000명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그의 부활을 시인하고 또 그를 왕으로 모시게 되었을까요?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그들의 일부는 예수를 죽이도록 정죄한 위원회의 회원들이었음) 이 "도에 복종"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를 그토록 신랄하게 비난했던 자들의 증언은 그의 부활 여부를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의 증언보다 더 가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의 영향력과 그의 세계를 제거해 버리려고 한 유대인들의 일치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의 주장에 굴복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증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는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사도 바울입니다. 먼저 그의 인간상을 관찰해 보십시다. 그는 누구입니까? 그가 자신에 대하여 소개하는 말을 들어봅시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 22:3)" 다음에 그의 동역자들 가운데서 차지하고 있는 그의 위치를 살펴봅시다. 그는 공명심에만 사로잡혀 있고 아무런 생활신조도 갖지 못한 자였습니까? 그는 무책임한 발언을 잘 하는 자입니까? 다시 그의 간증을 들어 봅시다.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 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 3:4-6)"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 대한 그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우리는 먼저 그가 스데반을 죽이기로 결의한 사람 가운데 하나임을 기억합니다. 다음에 그는 교회를 잔멸하고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긴 자입니다(행 8:3). 그가 주님을 만나던 바로 그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 온갖 박해를 가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바울이 하는 말을 주목해 봅시다.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 22:4)" 그렇다면 바울이 이렇게 잔학한 행위를 서슴지 아니한 것은 그의 인격적 성실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의 타락한 인간성 때문일까요? 여기에 대한 바울의 답변입니다.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 23:1)"

여기서 증인이 개종하기 전의 성품을 묘사해 보았습니다. 이제 그의 생애를 통해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를 살펴봅시다. 그가 개종하기 전에 자기에게 속해 있던 세속적 영화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함이라(빌 3:7,8)" 이러한 변화를 생각하고 그는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피조물"로 간주합니다(고후 5:17). 그는 유대교도인 사울에게서 그리스도인 바울로 변화를 입었습니다. 또한 그는 거짓 바리새인이었던 사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로 바뀌어졌습니다. 그는 또 박해자 사울에게서 박해를 당하는 자 바울로 변화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던 날부터 그의 생활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에 바쳐졌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 돌에 파묻히기도 하며 옥에 갇혔다가 드디어는 그의 스승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생겨난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해답밖에 없습니다. 그가 다시 살아나신 구주를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설교와 변론에는 언제나 예수의 부활사건이 강조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붙잡혔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행 23:6)" 벨릭스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았을 때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고소 내용을 논박하고 자기를 정죄한 자들에게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행 24:21)" 2년 후 베스도가 바울의 사건을 아그립바에게 위임했을 때 그는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임"을 시인했습니다(행 25:19). 사도가 왕 앞에서 자기의 입장을 변론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 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행 26:22-23)"

이러한 사람의 증언은 실로 죠세퍼스 및 타시터스 등의 사람들이 기록한 문헌보다 더 신빙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자가 그의 원수가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이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목격한 후에도 교회를 여전히 박해하였다면 아무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증언을 위해서 제단 위에 자기 몸을 바쳤다면 누가 그의 증언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전해오는 격언에 "행위는 말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진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바울의 성실성에 대하여 반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가 환각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하는 주장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났을 때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주의 임재로 인해서 비쳐온 빛을 보았습니다. 그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히브리어였기 때문에(행 26:14) 그들은 한 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는 일부러 바울(그 당시에는 사울이라고 불렸음)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예수의 임재에 대한 증거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 일을 아무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코 종교적인 광신자나 개성이 빈약한 얼간이가 아니었고 지력이 저능한 몽상가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기록과 언변을 통해서 그가 모든 시대에 걸쳐서 가장 뛰어난 사상가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Ⅲ. 이제 세 번째의 증거를 검토해 보기로 합시다. 1500여 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매주 이레째 되는 날을 절기로 지켜 왔습니다(신 5:15). 예수가 이 세상에 계실 동안 그는 모세의 율법과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는 주일의 엿새째 되는 날 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자기의 집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주일 첫날 새벽에" 그는 죽음의 세력을 꺾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바로 그 날 예수는 여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또한 두 사람의 제자와 열 사람의 제자들에게 각각 나타나셨습니다. 이로부터 한 주일이 지난 후에 그는 열 한 명의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진실로 그의 부활과 승천 사이에 끼어있는 주일 첫 날에 자기를 나타내신 것이 그의 관습이었던 듯싶습니다. 그가 성령을 보내어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신 것은 주일의 첫 날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과 초대 교회의 신자들도 매주 첫 날에 모여서 그에게 예배를 드렸습니다(행 20:7), (고전 16:2).

가끔 콘스탄틴 대제가 안식일의 예배 의식을 매주 첫 날로 변경시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는 교회가 설립된 이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배를 드려온 날을 지킨 것뿐입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돌아 가셨을 때 안식일은 폐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에게는 그 날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새날'이 모든 인류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날에 비하면 다른 날들은 모두가 무의미합니다. 이 날은 예수가 "부활을 통해서 친히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거하신 날"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날짜의 변경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는 '옛날'을 폐기하시고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지니고 있는 '새날'을 주셨습니다. 진실로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4)" 주일 첫 날이 - 이 날을 '주의 날'이라고 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입니다(계 1:10) -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지켜지는 한 우리 주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증언이 사라져 버리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을 이기심으로서 지금까지 사탄의 손에 쥐어 있던 "삶과 죽음의 열쇠"를 빼앗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는 죽음이 우리를 장악할 수 없게 하실 뿐 아니라 훗날의 언젠가는 우리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져 나올 것임을 확증하셨습니다.

소수의 무식자들이 15세기 동안이나 굳게 지켜온 국가적 절기를 없애버리고 오직 하나의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 전혀 새로운 날 하루를 세상에 줄 수 있었던 사실에 대하여 회의론 자들은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우리는 역사 이래 가장 특기할 만한 이 사건에 대하여 논증할 수 있는 자료를 이 밖에도 얼마든지 가지고 있습니다. 중세기 이전에 생겨났던 역사적 사건들 가운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고증할 수 있는 만큼의 자료를 지니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령 쥴리우스시저의 암살 사건을 예로 들어 봅시다. 이 로마 장군의 죽음을 설명해 주는 고증적 자료는 예수의 부활 사건에 대한 증거 자료와 비교한다면 그 신빙성은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가들과 교육자들은 시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의 역사적 사건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 마치 지식과 교양의 표식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의론 자들의 '자유'와 '관용'은 진리에 대하여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악덕에 불과합니다. 이성적 사변에 대하여 경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과는 더불어 논의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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