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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서 모인 회의
  연구과 (사도행전) - 18 과
할례에 대한 논쟁 (행 15:1-5)
제 1차 전도 여행을 끝마치고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에 머무는 동안 유대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제의했습니다. 이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제의한 사람들은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고"고 주장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유대인 남자는 누구나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창 17:9-14). 그런데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위의 유대인적 사상을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 안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한 사람들은 복음이 처음에 전파되었던 곳으로써 사도들이 교사로 활동했던 유대 지방에서부터 온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바울과 바나바는 위와 같은 유대인적 사상을 반대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을 얻고 해답을 구하기 위하여 안디옥의 형제들은 바울과 바나바와 다른 형제 몇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저들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 앞에서 할례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기 시작했었습니다. (1)바울은 직접 계시에 의하여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갈 1:11-12) 그 자신의 어떤 표준이 있었으며 (2)바울이 예루살렘에 간다는 것은 그의 권위가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사도들과 장로들보다 열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친히 명령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예루살렘에 가기를 거절했을 것입니다(갈 2:2).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서 이 문제를 해결토록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은 안디옥 교회의 형제들을 친절히 환영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저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인의 땅에서 역사하신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형제들(바리새인들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바울과 그 일행들이 이방인들을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개종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무를 교훈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즉 개종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게 해야 하며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할례 문제에 대한 토론(행 15:6-21)
형제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할례 문제에 관하여 토의를 하게 될 때 그 가운데서 저명한 형제가 회중 앞에 일어서서 발언한 내용이 본문 가운데 보존되어 있습니다.

1) 베드로의 변론(행 15:7-11)
첫째로, 그는 자기 자신이 고넬료의 가정에서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상기하면서 자기가 제일 처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사람이라는 것을 형제들에게 기억하도록 했습니다(9절).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저들에게 내려주심으로써 저들의 개종이 진실함을 증명하신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있어서 속죄에 구별을 두시지 않았음을 말했습니다. 하나님도 유대인이나 이방인 사이에 차별을 두시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인간들이 그 같은 차별을 둘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할례나 모세 율법의 멍에를 지움 없이 받으셨습니다. 오직 유대교의 선생들만이 제멋대로 이런 일을 고집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넷째로, 그러므로 유대의 선생들은 유대인들도 감당치 못하는 멍에를 이방인에게까지 지우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다섯째로, 베드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불문하고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름을 진술했습니다. 이것은 할례나 모세 율법이 구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2) 바나바와 바울의 진술(행 15:12)
베드로에 뒤이어 바나바와 바울이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이적들을 다시 이야기 했습니다. 이 이적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으며 모세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저들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역사들이었다고 역설했습니다.

3) 야고보의 변론(행 15:13-21)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게 하는 멍에를 지우지 않았다는 것을 진술했습니다. 야고보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베드로의 변론을 다시 확신시켰습니다. 베드로의 변론은 바나바와 바울이 변론한 내용에 부가한 것에 불과하지만,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성취됨을 역설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또한 이들 형제들이 이해(理解)하는데 부족한 사항을 더 보충한 것입니다. 여기서 야고보는 단 한 사람의 선지자(암 9:11-12)를 인용했지만 선지자들의 말도 여기에 합하더라고 말한 이상 여기에 인용된 선지자 밖에도 모두 적용이 되는 것임을 암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 인용 구절은 70인 역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히브리어 원서보다도 70인 역에 가까운 문체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위에 인용한 말을 하기에 앞서 유대 왕국의 몰락을 예언했습니다. 다윗왕의 집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다윗의 집이 재건될 것과 다윗의 후예에 의하여 이룩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국의 몰락 이후 예수께서 하늘의 보좌에 오르기까지 다윗의 가문에서 아무도 왕위에 오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천상 보좌의 즉위는 무너진 다윗 왕국의 재건이 분명하며 여기에 뒤따라서 '남은 자들'도 주가 인도하심을 받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을 방문한 이래 주를 찾아오는 이방인의 자세를 표현함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야고보가 변론한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모세 율법의 멍에를 지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음 네 가지 사항을 이방인들로 하여금 실천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①우상의 더러운 것 ②간음 ③목매어 죽인 것 ④피를 가까이 하지 말 것 등이었습니다.

회의 결과 (행 15:22-29)
베드로, 바나바, 바울, 및 야고보의 변론은 압도적으로 우세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선생들의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저들이 야고보의 제안을 채택한 후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써서 안디옥에 보냈습니다.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가결 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재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그런데 이와 같은 예루살렘의 회의가 오늘날 많은 교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대회, 총회, 또는 지방 회의에서 교리 및 신조, 헌장들을 선정하는 것과 같은 사상을 뒷받침 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문제의 해답을 위하여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① 이 회의는 어느 지역의 교회들로부터 대표자들이 모여 구성된 회의가 아닙니다. 안디옥 교회는 단순히 형제들을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과 상의하게 하려고 보낸 것에 불과합니다.
② 모든 문제들의 결정은 모두 영감 받은 자들이 결정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보낸 편지의 내용에 이와같이 영감으로 이루어진 사실이 지목되어 있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28절)"

이와 같은 환경이 오늘날 대개의 교파들이 총회(대회)나 노회(지방회) 등을 구성하여 헌법 및 모든 제도를 설정하는 기관과는 전연 다른 점입니다. 우리 인간은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그의 왕국이란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고전 1:13). 그 왕국은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만 모든 법을 제정하십니다. 오늘날과 같이 교회 안에서 법을 제정하여야 한다는 일은 진정한 교회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왕 되신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의 말씀(모든 성서)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모든 선한 일을 공급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딤후 3:16-17).

안디옥 교회에 평화가 찾아 옴 (행 15:30-35)
바울, 바나바, 유다와 실라가 안디옥 교회에 이르렀을 때 모든 형제가 모여서 예루살렘에서 갖고 온 편지의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이 회의에 대하여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가운데 기록하기를(갈 2:1-10) "나는 더 이상 부가할 것이 없노라"고 함으로써 이방인에게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일이나 할례가 적용되지 않음을 해명했습니다. 디도는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 신자의 모범입니다. 바울은 디도가 할례 받기를 간청함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할례나 모세의 율법을 지킴이 구원의 요건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며 디도 자신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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