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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의 2차 전도 여행(2)
  연구과 (사도행전) - 20 과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힘 (행 16:16-24)
빌립보에 귀신들린 소녀 하나가 그녀의 주인에게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점쟁이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불행한 소녀는 바울과 그 일행을 보고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면서 그들을 몇 날 동안이나 따라다녔습니다.

그 소녀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왜 그 소녀의 협력을 거절하고 오히려 그 입을 닫게 해 버렸을까요? 곧 그 소녀에게 붙은 귀신을 쫓아내 버린 것입니다. 그 대답은 이러합니다. 즉, 마귀 들린 자를 복음의 증인으로 삼는다면 사람들이 마귀와 사도들 사이에 무슨 친밀한 관계가 있는 줄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사도들의 명성이 마귀들에게까지 미치는 동시에 마귀들의 악평이 사도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잘못된 영향을 예방하기 위해서 예수와 사도들은 설령 그들을 좋게 말해주는 귀신까지라도 쫓아내신 것입니다.

이 귀신들린 소녀의 주인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격노하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를 저자의 관원들에게 데리고 갔으나 자기들의 행위에 대한 진정한 이유는 숨겼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바울과 실라의 말을 더 신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이 전도자들이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유대인들이라고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이에 화가 난 무리들은 아우성을 쳤습니다. 관원들은 정의를 실현해야 할 자기들의 의무를 망각했습니다. 전도자들의 옷을 찢어서 벗긴 후 그들을 때리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이렇게 때린 후에 간수에게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엄히 지키도록 분부하였습니다. 그들은 더 단단히 지키기 위해서 그들의 발에 쇠고랑을 채우기까지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기들이 도와주러 온 바로 그 사람들에 의해서 단단히 쇠고랑에 채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터지고 상한 등을 따뜻이 만져주거나 옷 입혀 주는 손길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음산하고 어두운 로마의 지하 감옥도 그들의 신앙을 분쇄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밤중에 그들은 여전히 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의 체험을 통해서 그가 나중에 이 도시 사람들에게 가르친 위대한 진리를 배웠습니다(빌 4:6,7).

다른 죄수들이 그들의 신앙에 귀를 기울여 듣고 있을 때 갑자기 옥문이 흔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었던 쇠고랑이 마루 위에 떨어졌습니다. 잠을 깬 간수는 옥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의 죄수들이 탈옥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무태만으로 인해서 사형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자결하기로 결심하고 그의 칼을 뽑았습니다. 바울은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도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보내신 전도자임을 알게 되던 그 전날까지만 해도 그는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모든 형편이 달라졌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죄수의 착고가 풀리게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영생의 변두리에서 떨고 섰던 그는 등불을 찾았습니다.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바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31절)" 누가는 덧붙여 기록하기를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32절)"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전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들어야만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롬 10:17). 만일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고만 하고 말았다면 간수는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가 주 예수입니까?" 그 간수는 우리가 성경에서 읽고 잘 아는 참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에 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이교도였습니다. 그에게 요구한 첫 번째 사실은 주를 믿는 것이요, 믿고 회개한 후에 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33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한 말은 바울이 간수의 질문에 대답한 말의 전부가 아닙니다. 누가가 기록하지는 않았으나(32절), 바울의 말로 인해서 생겨진 또 하나의 결과는 그날 밤에 간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가 준 해답의 일부가 됩니다.

하나의 문제에 대한 세 가지 해답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란 물음에 대해서 성경에는 세 가지의 해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문제가 제기된 형편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3000명(신자들)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사울(회개한 신자)
"일어나서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간수(불신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위의 문제에 주어진 대답들이 왜 서로가 꼭 같지 아니한가 생각해 보십시오.
(실례) 어떤 사람이 100원의 돈을 가지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이 때 "당신은 얼마를 갖고 있소?" 하고 물으면 "100원"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30원짜리 연필을 한 자루 산후에 어떤 이가 "당신은 얼마를 가지고 있소?" 하면 "70원"이라고 대답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60원을 주고 공책을 한 권 더 샀다면, 어떤 이가 "당신은 얼마를 가지고 있소?" 하면 "10원"이라고 대답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구나 이것을 옳게 생각할 것입니다. 같은 질문에 대해서 서로가 다른 세 가지의 해답이 주어졌으나 그것은 모두 정답입니다. 어째서 그러합니까? 이것은 해답자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대답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는 문제를 각 사람이 제기할 때마다 그의 형편에 따라서 구원에 이르는 해답이 다르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개종 사건을 각각 검토해 봅시다
1) 빌립보의 간수
믿지 않는 이교도 한 사람이 하나님의 전도자에게 그가 무엇을 해야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간수는 초보로부터 시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그에게 주어진 최초의 명령은 믿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전도자는 사죄의 조건이 언급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에게 전하였습니다. 그가 곧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세례가 사죄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는 알지도 못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의무는 곧 이행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주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세례의 필연성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2) 3000명(행 2:38)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물은 자들의 형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를 죽인 열렬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들은 그에 대한 살인자들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마음에 가책을 받은 그들은 외쳤습니다. "우리는 어찌하리이까?" 베드로는 마치 바울이 간수에게 말한 것처럼 그들에게도 "믿으라"고 명령했습니까? 아닙니다. 그 3000명은 이미 믿는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간수는 믿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3000명은 이미 구원의 조건 가운데 하나를 지키고 있는 셈입니다. 그들은 이미 행한 일(믿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시를 받지 않고 앞으로 행해야 될 일 즉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3) 사울(행 9:1-18)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이 사울에게 나타나신 후 그에게 예수님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란 사실을 확신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사울은 "주여, 당신은 저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시나이까?" 하고 외쳤습니다. 지시를 따라서 그는 다메섹에 들어간 후 거기서 사흘 동안 회개의 표시로 금식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아나니아가 와서 "일어나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6)고 말했습니다. 사울은 간수의 경우처럼 "믿으라"는 권고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믿고 있었고 회개했기 때문에 회개하도록 지시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뒷걸음질을 칠 필요가 없었고 그가 있는 자리에서 계속 전진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가 이미 행한 일에 대해서는 그 일을 다시 하라는 지시를 받지 않았고 단지 그가 행하지 못한 일 즉 "일어나 세례 받는 일"을 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누가는 "그 간수와 자기 권속이 다 세례 받은 후……."(행 16:33)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유아 세례의 시범이 되는가요?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 다음 구절을 읽어보십시오.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여러분은 유아(어린 아이)가 간수의 온 집이 행한 일, 즉 믿음의 행위를 가질 수가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어린 아이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믿을 수가 없었다면 그 간수의 집 안에 있던 어떤 어린이도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간수의 세례는 약식 세례의 본이 되는가? 약식 세례를 주장하는 사람은 간수와 그의 가족이 세례 받은 장소는 감옥인데, 거기서는 침수 세례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①간수가 저희(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옥 밖으로 나갔다(30절). ②"바울이 주의 말씀을 전하더라(31,32절)." ③"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세례를 받은 후(33절)" ④"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34절)" ⑤그가 세례 받은 장소는 감옥 안이 아니요 그의 집도 아닙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장소였습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약식 세례를 주장할만한 근거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죄수들이 풀려나옴 (행 16:35-40)
그 이튿날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바울과 실라를 석방시키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떠나기를 거절했습니다. 바울은 이 통치자들에게 그들이 범한 몇 가지 과오를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①미결수를 공중 앞에서 구타한 사실 ②로마의 시민을 때린 사실 ③그들을 투옥한 사실을 폭로했을 때 상관들이 나와서 그들에게 그곳을 떠나 주도록 간청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조건을 다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익한 모든 조건을 충분히 활용했습니다. 바울이 이 불의한 상관들에게 써먹은 로마 시민권의 권리가 그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사회생활에 임해야 될지 좋은 본보기를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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