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의 아볼로와 아가야 (행 18:23-28)
바울이 돌아오기 전에 성경에 능한 전도자 아볼로가 에베소로 왔습니다(고전 1:12), (고전 3:5-6)
언변에 능한 이 전도자는 그리스도를 담대히 전했으나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요한의 세례가 그리스도의 세례에 의해서 바뀌어졌다는 것과 그리고 전자는 그리스도를 대망하고 있었던 반면에 후자는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회상하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를 데리고 와서 그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었습니다. 성경에 능하고 대담하고 열정적이며 언변에 탁월했던 그도 과오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이 정직한 아볼로는 이들 부부가 하나님의 도를 완전하게 가르쳐 준 것을 즉시 받아들였습니다.
아볼로가 아가야에 있는 교회를 ―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 때 세워진 ― 방문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에베소 교회에서 얻은 추천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추천장으로 인해서 열성 있는 교회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들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만일 그에게 결함이 없는 한 추천장을 써달라고 할 때 거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의 에베소 전도(행 19:1-41)
제 2차 전도 여행이 끝날 무렵에 바울은 에베소에 들려서 회당에 온 많은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사도들에게 더 오래 체류하기를 간곡히 요청을 할 때 그는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행 18:19-21). 하나님의 영감 받아 역사를 기록한 저자는 바울의 이러한 약속과 훗날 그가 다시 돌아 올 때까지의 여러 가지 사건을 재빨리 묘사하고 있습니다.
(1) 12명의 남자가 다시 세례 받음 (행 19:1-7)
에베소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그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리스도의 세례와 다릅니다(마 28:18-20), (막 16:15-16). 요한의 세례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 받기로 한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졌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그 성격상 주님이 오셔서 그의 세례를 선포하셨을 때 그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 열 두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세례로 인해서 요한의 세례는 그 필요성이 없어진 후임에도 요한의 세례를 받은 듯싶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다시 세례를 받은 것은 세례를 반복해서 받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결코 옳은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바울은 회당과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침 (행 19:8-12)
석 달 동안이나 이 위대한 복음 전도자는 회당 안에서 도를 전하였습니다. 이것을 사교라고 비방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도는 두란노 서원으로 옮긴 후 거기서 설교를 다시 계속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많은 이적을 행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적과 함께 2년 동안이나 전도를 한 결과 아시아 전역과, 로마 ― 에베소가 제일 큰 도시이다 ― 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계 1:4).
(3) 책을 불사름 (행 19:13-20)
에베소에 있는 사람들은 악령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장했습니다. 많은 이적을 행한 바울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을 보고 그들은 그 이적 안에 그의 능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가르친 예수의 이름으로 한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려고 했을 때 마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아는데 너는 누구냐?"
이 사건이 알려졌을 때 예수의 이름은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도자의 사역은 더욱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의 실패로 인해서 에베소에 있는 모든 사기꾼들은 불신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반응은 민감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을 받은 후에 사람들은 비록 돈벌이는 되지만 그것이 죄임을 알게 되자 그들은 모두 돈벌이를 팽개쳤습니다.
(4) 바울이 앞날의 일을 설계함 (행 19:21-22).
하나님의 전도자는 다른 일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 2차 전도 여행 때 교회가 설립된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지나가고 싶어 했습니다. 다음에 그는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 후에는 로마를 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종은 그가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여러 가지 환경 아래서 이러한 지역들을 돌아다녔습니다.
(5) 은장색들의 난동 (행 19:23-41)
에베소에서 은장색들은 아데미의 은감 실을 만들어서 많은 돈벌이를 했습니다. 이 때에 가장 유력한 은장색인 데메드리오가 바울의 전도로 인하여 그들의 업이 망하게 된 것을 보고 여러 은장색들을 모아서 바울에 대해서 분노를 터트리게끔 그들을 충동시켰습니다.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만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19:25-27)"
이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바울을 적대시하여 말한 것 중에 가장 진실하고 솔직한 발언입니다. 그 모든 논고는 사실과 일치합니다. 그들이 묘사한 바울의 영향력은 조금도 과대평가한 것이 아닙니다. 발언자의 동기도 정직하였습니다. 그는 돈벌이를 탐닉한 자임을 스스로 자인하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과 직공들은 에베소에 있는 어느 사람들보다 그들의 손으로 만들고 다듬은 은장색이 결코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신전에 대한 그의 언급은 우리가 이 신전을 에베소의 영광이요 고대 세계의 일곱 가지 경사로운 구경꺼리 중의 하나란 사실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건물의 길이는 425피트요, 넓이는 120피트였습니다. 이 건물 주위에는 높이가 60피트나 되는 흰 대리석 기둥이 4피트씩 간격을 두고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그 기둥의 수효는 120개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넓은 대리석판의 지붕을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로 인해서 이 장엄한 건물이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된다고 생각한 이교도들이 바울에게 격노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데메드리오의 발언은 청중들을 격노케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위대하신 에베소의 아데미여" 하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외침은 아데미 여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에베소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시켰습니다. 이 군중들은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미쳐 날뛰는 군중이 모인 연극장에 가려고 했으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우들이 제지하였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 무리들의 광란하는 모습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교도들은 유대인들이 우상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문제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아주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들의 처지를 변호하기 위해서 알렉산더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그에게 발언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격노한 군중들의 아우성이 가라앉았을 때 그곳 서기장이 나와서 그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발언 요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에베소 성이 스스로 아데미 우상의 전각지기가 된 줄을 알면서 왜 이처럼 경솔한 짓을 하려고 하는가?
② 이 사람들은 우리 여신을 훼방하거나 전각의 물건을 도적질 한 일이 없다.
③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으면 재판날도 있고 총독도 있으니 피차 서로 고소하라.
④ 이 집회는 불법이요, 소요의 사건으로 인해서 로마로부터 책망 받을 위험이 있다(에베소는 로마 영토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으나 자치권을 부여받은 자유 도시였습니다. 로마는 자치권을 빼앗고 과중한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형벌을 가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서기장의 발언으로 인해서 군중은 곧 해산되었습니다.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도 그곳을 피해서 주님의 사업을 위해 살고자 했습니다(행 20:3-4), (행 27:1-2), (골 4:10).
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방문함 (행 20:1-6)
군중의 폭동이 있은 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여기서 그는 제 2차 전도 여행 때 세워진 교회들을 방문하고 그 곳 신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헬라로 가면서 그는 석 달 동안이나 같은 일에 종사하다가 드디어는 수리아로 가고자 했으나, 유대인들이 그의 생명을 해하려고 한다는 음모가 알려져서 결국 그의 계획은 좌절되어 버렸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몇 사람의 형제들과 함께 마게도냐로 돌아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 일행은 드로아로 항해를 떠났습니다.
드로아에서 주일 집회를 가짐 (행 20:6-12)
바울의 7일간의 체류는 드로아에 있는 신자들과의 집회를 가짐으로써 끝났습니다. 바울의 설교는 밤늦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다음날 떠나기로 작정한 그는 제자들에게 그의 최선을 다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 이층 창에 걸터앉아 졸고 있던 유두고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설교는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죽었는데 이 때 사도가 유두고를 껴안자 그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 사도행전 20:7에서의 교훈
매주 첫 날(일요일)에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초대 교회 신자들의 실행이었습니다. 이 때 드로아에서 모인 집회가 보통 때와 다른 점은 집회 그 자체가 아니라 바울이 참석하여 설교를 했다는 것뿐입니다. 드로아에 있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떡을 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하나님은 안식일(토요일)(출 20:8)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모세의 율법은 이미 지나갔습니다(엡 2:14-15), (골 2:14). 우리가 이제는 번제를 드리지 않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 그것이 율법의 일부인데 ― 안식일도 지키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신자들이 매주 첫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린 것을 본으로 삼고 따릅니다(행 20:7), (고전 16:1-2).
□ 주님의 만찬을 베푸는 횟수
매주 첫 날에 모인 초대 교회 신자들의 습관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만찬을 나누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와 정반대로 그것은 오히려 그들이 모인 목적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서 예배를 드린 드로아의 교회는 주의 만찬의 횟수에 관한 주님의 뜻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도 그들의 행사를 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관습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리 하라"(히 1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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