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아에서 밀레도까지의 항해 (행 20:13-16)
드로아와 앗소는 반도의 양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육지로는 20마일 바다로는 40마일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바울은 걷기로 작정했습니다. 전날 밤은 드로아에서 전도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행 20:7,11). 그로 인해서 피곤이 몸에 엄습해 왔으나 이 전도자는 여행에 편한 배를 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드로아에 있는 형제들과 작별하기가 심히 괴로웠을 것입니다. 혼자서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어 했던 것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결단을 내리게 한 듯싶습니다. 앗소에서 바울은 배를 타고 그의 동역자들과 동행하였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을 접견함 (행 20:17-38)
밀레도에서 사도는 3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였습니다. 배의 출항 시간을 알 수가 없어서 그는 에베소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 장로들에게 향한 고별사가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의 전형적인 고별사가 될 것입니다.
(1) 바울이 과거를 회상함(18-21절)
하나님의 종은 그의 초년기에 에베소에서 행한 박해를 잠시 회상하였습니다. 그는 집집마다 방문하기도 하고 혹은 공중 앞에서 말씀을 전하기도 한 그의 전도 생활을 생각했습니다.
(2) 바울이 미래를 내다 봄(22-27절)
그는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어떠한 위험이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설령 죽음에 이를지라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대한 그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한 그의 결심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얼굴을 다시 볼 수가 없으리라고 말하면서 사도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런고로 이를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모든 뜻을 전하지 않는 교회 전도자는 주의 도를 받지 못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전해야 하는 자의 책임이 얼마나 두렵습니까?(겔 3:16-21)
(3) 바울이 장로들에게 권고함(28-31절)
그의 권고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향하여 그들을 보고자 하였습니다(17절). 그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그들을 '감독자'로 간주 하였습니다(28절). 이러한 용어의 변화는 '감독'과 '장로'는 같은 것이며 이 두 가지 용어는 하나의 동일한 직책을 의미할 뿐 아니라 한 직책의 성격상 두 가지 면을 지적한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로'들은 다음과 같이 권면을 받습니다. ①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②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③교회의 목자가 되라. 이것이 '먹인다' '친다'는 단어의 뜻이 되었습니다. ①은 개인적 신앙이 없으면 교회 안에 어떠한 직책도 의미가 없음을 말합니다. ②는 교회의 상황을 언제나 감시할 것을 말합니다. ③은 그들이 교회를 위해서 하는 모든 일이 마치 목자들이 그의 양떼를 위해서 하듯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이 교회가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로 산 것이며 그 목적은 그 피의 대가로 인해서 그들이 교회를 위하여 모든 헌신을 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한 물품의 가치는 그 값에 의해서 거의 결정이 됩니다. 한 사람이 문맹 촌에 들어가서 많은 비용과 그의 희생적 수고를 통해서 학교를 설립했다고 합시다. 누가 "교육이란 대단치 않은 것이야!" 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대가로 교회를 사셨습니다(행 20:28). 당신은 예수가 "오, 교회는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위해서 지불된 대가 즉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한다면 교회의 가치는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준 바울의 권고(28절)는 구원과 교회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히 9:22), (벧전 1:18-19). 그러므로 죄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그의 피가 뿌려진 교회에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당신이 7,500원에 외투를 한 벌 샀다면 그 돈의 가치를 활용하는 오직 한 가지의 길은 그 외투를 입고 다니는 것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그의 피를 흘리셨고 그 피로 교회를 사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은혜를 입고자 원한다면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두 가지 위험성을 지적하고 이를 장로들에게 경고 하였습니다.
①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이 와서 신자들로 하여금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②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 마치 탐욕에 가득 차 늑대와 같이 양떼들을 해칠 위험성이 있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경고하면서 이러한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가 일깨워 내가 3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4) 개인적인 문제(32-25절)
에베소 장로들에게 부드러운 말로 권면하면서 사도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가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공급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돕고 또 주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바울은 돈을 얻기 위해서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한 바와 같이 전도자가 그의 직무로 인해서 보수를 받는 것이 나쁘지는 않습니다(고전 9:1-14). 그러나 우리가 돈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전도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에 전개된 장면은 우리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다시는 그들이 바울을 볼 수가 없게 된다고 생각하자 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녀자나 어린 아이들이 흘리는 눈물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흘린 눈물은 위대한 십자가에 대한 사도들의 애정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물은 반드시 약자의 표식인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도 우신 일이 있습니다(요 11:35). 진실로 성경은 우리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롬 12:15).
밀레도에서 가이사랴까지 (행 21:1-9)
배를 타고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바다라를 향해 갔습니다. 그 후 다시 두로에 상륙하여 칠일 동안 배가 짐을 풀고 있을 때 바울은 교회에 머물렀습니다.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 다시 배를 타야 했을 때 형제들은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을 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가 떠나기 전에 그들 일행은 해변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배가 돌레마이에 도착한 후 바울과 그의 일행은 형제들과 함께 하루를 머물러 있다가 이튿날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이 여러 도시에 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은 팔레스틴 전역에 걸친 발전의 정도를 보여줍니다(행 8:4), (행 11:19). 가이사랴에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빌립의 손님으로 대접을 받았습니다(행 6:1-7), (행 8:5-40).
바울이 옥에 갇힐 것을 예고함 (행 21:10-14)
빌립과 함께 머물러 있는 동안에 유다에서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에게 와서 그가 만일 예루살렘에 올라간다면 투옥당할 것임을 미리 알려 주었습니다. 아마 그는 사도행전 11:27-30에 언급된 흉년을 예고한 바가 있는 선지자였으리라고 짐작이 됩니다. 아가보의 예고가 너무나 충격적이고 두려운 일이어서 가이사랴의 형제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도록 간청했습니다. 그의 동역 자들까지도 사도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위험에 뛰어들지 않도록 권고했습니다. 바울은 자기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개인의 이해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바울이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기의 계획을 관철하려고 했던 이유를 우리는 충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가야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고밖에 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행 20:22), (행 21:14).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행 21:15-16)
곧 바울과 그의 일행은 나손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서 떠났습니다. 나손은 예루살렘에 집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과 그의 일행은 거기서 묵을 수 있었습니다.
(1) 예루살렘에서의 바울의 대접(행 21:17-25)
신자들은 그를 반갑게 영접하였습니다. 이 위대한 사도는 장로들에게 그의 행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방인 가운데서 하신 일들을 소개했습니다. 장로들은 바울에게 수천의 유대인들이 모세의 율법에 뜨거운 집착을 가지면서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실을 말하였습니다. 율법에 관해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알고 이 장로들은 유대인 신자들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네 명을 서약케 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 서약의 정확한 성격이나 바울의 행위에 대한 의미가 많은 논쟁을 야기해 왔습니다.
(2) 바울이 붙잡힘 (행 21:26-36)
사도는 곧 종교적 편견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습니다. 아시아에서 온 어떤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붙잡은 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동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에베소의 이방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격노한 군중들은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주재하는 로마의 천부장이 도착했을 때 바울을 죽이려고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범죄자인줄 알고 군사들에게 그를 체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천부장이 군중들로부터 그의 범죄 사실을 알아내려고 했으나 사람마다 고소 내용이 달랐습니다. 군중들이 너무나 시끄러웠기 때문에 도저히 진상을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은 바울을 영문 안으로 옮기라고 명령했습니다.
(3) 바울이 군중 앞에서 발언의 기회를 얻음 (행 21:37-40)
바울이 끌려갈 적에 그는 천부장에게 한 가지 청탁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해도 좋습니까?" 희랍어로 된 이 질문은 지금까지 죄수를 말썽 많은 애굽인으로만 생각했던 관리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 자신을 소개하고 그의 청탁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대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유대인이라 길리가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천부장은 그의 발언을 통해서 왜 그렇게 소란한지 그 진상을 알 수 있을까 하여 그의 청탁을 들어 주었습니다. 군중들에게 조용하라고 손짓을 한 후 히브리말로 그의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4) 바울이 군중들에게 연설함(행 22:1-21)
□ 개종하기 전에 박해자였던 바울(1-5절)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천부장도 바울의 신원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도는 먼저 그가 개종하기 전에 어떠한 사람이었던가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는데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이에 증인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한 때 그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대한 입장이 지금 그의 청중과 꼭 같았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로부터 동정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제일 중요한 생각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무엇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옛 신앙을 버리고 지금의 위치로 바꾸게 했던가?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 사도는 그의 개종 사건을 이야기 했습니다.
□ 그의 개종 사건 경위(행 22:6-16), (행 9:1-19)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들어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지시받도록 그 도시로 갈 것을 분부하셨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와서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왜 지체하느냐?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주의 이름으로 죄를 씻으라."
"너의 죄를 씻으라"는 표현은 우리가 올바르게 세례를 받아야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사람들은 "물이 어떻게 사람을 구하느냐?고 하면서 이 사실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물론 물속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능력이 있습니다. 실로 암 못에서 눈을 씻은 소경은 그의 시력을 회복했습니다(요 9:6-7). 물은 병을 고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고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소경이 물에 가서 씻으라는 그의 명령을 순종했을 때 비로소 고쳐진 것입니다. 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자체에는 아무런 신통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에게 물 속에서 세례를 받으라는 그의 계명을 지킬 때 죄를 용서하십니다(벧전 3:21).
바울이 그의 개종 사건을 설명한 목적은 그가 이전에는 비록 박해자였으나 이제는 하늘로부터 그가 받은 증거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자신의 입장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임무 (17-21절)
박해자였던 자기가 그리스도의 종으로 바뀌게 된 경위를 충분히 설명한 후에 이 죄수는 자기의 임무가 주님이 지시하신 바대로 이방인 가운데서 전도하는 것임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던 사실을 말해줍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개종한 후에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전에 누가는 그의 생명을 위협하는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제들이 그를 도망치게 한 사실을 기록했습니다(행 9:28-30). 이 연설에서 우리는 그가 주님의 명령이 없이는 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울은 그가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 가운데 가담했을 뿐 아니라 박해에도 앞장을 선 자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야말로 그의 이전 동료들에게 새로운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돌아가야 할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배신자로 간주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용기와 주 예수께 대한 개종의 순수성을 알 수 있게 됩니다.
(5) 설교의 효과(행 22:22-29)
"내가 너를 이방인 가운데로 보내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바울이 전할 때까지 그들은 조용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발언이 그들을 미친 듯이 격노케 했습니다. '이 때에'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할례 받은 자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할례자들을 유대인들과 함께 종교적 교제를 갖게 하는 일은 그들로 하여금 굉장한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을 폭발시키게 한 것은 이방인에 대한 사도로서의 바울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의 연설이 중단되었을 때 백부장은 바울의 범죄 사실에 대하여 충분한 단서를 포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이상스러운 죄수가 자기의 범죄행위를 자백하도록 백부장은 그에게 채찍을 가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병사들이 백부장의 명령에 응하려고 했을 때 바울은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로마 사람을 이렇게 취급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천부장이 그러한 바울의 항의를 듣고 "네가 로마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바울은 "그렇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사도는 그가 로마의 시민이라고 밝혀 주는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것을 요구하지는 아니한 듯 합니다. 맹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겁내지 않는 그의 침착성 그의 장려한 연설 그 자신이 날 적부터 로마의 시민임을 자처하는 그의 품위 있는 자태, 이 모든 것이 천부장으로 하여금 바울의 주장을 믿게 하였습니다.
(6) 유대인 공회 앞에 선 바울(행 22:30), (행 23:10)
천부장은 군중들의 고소나 바울 자신의 연설이나 혹은 그에게 가해진 채찍질을 통해서 바울의 범죄 사실을 포착해 보려고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드디어 그는 바울의 범죄 행위를 찾아내기 위해서 유대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에 그를 출두시켰습니다.
바울은 그 자신을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나는 오늘까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그는 자기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일은 결코 하지 아니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교회를 박멸하려고 했을 때도 그는 그의 양심에 따라 한 것입니다. 이 사람보다 더 성실한 사람도 없거니와 이 사람보다 더 심각한 과오를 범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실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조건이 된다고 하는 견해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바울의 행위를 정당화 시켜줍니다. 인간은 그의 창조주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서 성실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성실성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의 경우는 그 표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 회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자는 부활을 주장하고 천사와 영의 존재를 믿었으며 후자는 이 모든 것을 부인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고 한 사도의 발언은 바리새인들의 동정을 얻게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새롭게 평가했습니다. 여기서 생겨난 알력 때문에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천부장은 군사에게 명하여 무리 가운데서 그를 데려다가 영문으로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7) 바울이 용기를 얻음 (행 23:11)
바울은 그와 같은 죽음의 고비를 수차 넘겼습니다. 그날 밤 주께서 말씀 하시기를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은 우리가 사도행전을 계속 공부해 나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8)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가 탄로 남 (행 23:12-22)
40명의 사람들이 바울의 시체를 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맹세하면서 그를 암살하기로 각오했습니다. 그들은 공회에 가서 바울을 다시 출두시키라고 요청하고 그가 법정으로 끌려갈 때 숨었다가 죽이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바울의 생질이 재빨리 바울에게 와서 이 음모의 사실을 알렸습니다. 바울의 지시대로 그는 천부장에게 가서 이 사실을 모두 고했습니다.
(9) 바울이 가이사랴로 옮겨감 (행 23:23-30)
천부장은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듣고 그날 밤 가해자들이 오기 전에 그를 딴 곳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루시아는 바울을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써서 보내기를 천부장은 바울이 로마 사람인 까닭에 격노한 군중으로부터 그를 구해내고 싶어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도에게 채찍을 가해서 그의 범죄 행위를 자백시키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것 뿐입니다. 그 사실 외에 이 편지는 진실한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10) 바울이 벨릭스에게 넘겨짐 (행 23:31-35)
가이사랴에서 바울과 함께 루시아가 쓴 편지가 벨릭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는 바울에게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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