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심문 당함
  연구과 (사도행전) - 24 과
바울이 벨릭스 앞에서 심문 당함 (행 24:1-9)
바울을 정죄한 자들이 벨릭스에게 그를 고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로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도자를 송사하기 위해서 변사인 더둘로를 데리고 왔습니다. 더둘로는 벨릭스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서 먼저 그의 위업을 찬양한 후에 바울을 고소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①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② 나사렛 이단의 괴수이며
③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목들은 증명할만한 아무 근거도 없는 사실들이었습니다. 더둘로는 벨릭스가 죄수를 심문해 보면 자기의 주장이 옳은 것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더둘로의 발언에 동조하였습니다.

바울의 변명 (행 24:10-23)
사도는 12일 동안 체류한 예루살렘에서 그가 한 일들을 살펴본다면 그를 정죄한 논고가 아무런 근거도 갖고 있지 못함을 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과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신앙을 자유롭게 고백하였습니다. 다음에 그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간 목적은 그 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그가 자선 사업에 종사하는 자일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고소한바 말썽꾸러기가 아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를 정죄한 자들이 제기한 모든 질문에 대하여 바울은 서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벨릭스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그는 유대인들의 감정을 자극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째, 바울이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는 바울을 놓아주는 대신 돈을 얻고자 했습니다(17절). 벨릭스는 자유를 돈과 바꾸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 여기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26절).

바울이 벨릭스와 드루실라에게 전도함 (행 24:24-27)
그 후 벨릭스는 그 아내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도"에 관해서 들었습니다. 설교의 요지는 소개되어 있으나 이 하나님의 전도자가 강론한 것을 누가는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담한 전도자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을 강론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벨릭스는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어찌할꼬?"라고 외칠 만큼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전도자에게 그는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그에게 훗날 "틈quot;이 생겼는지 어쨌는지를 말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베스도 앞에 서다 (행 25:1-12)
벨릭스의 후임자로서 베스도가 총독으로 임명 받은 직후에 그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와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그에게 탄원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서 오는 도중에 그들이 길가에 숨어 있다가 그를 죽이기 위한 책략이었습니다. 베스도는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였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그의 전도자를 함부로 내버리시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이사랴에 왔을 때 다시 한 번 그들은 바울을 고소했으나 벨릭스에게 송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무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베스도는 죄수를 마땅히 놓아주어야 할 것이었지만 유대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받겠는가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나는 가이사에게 심문을 받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로마의 시민에게 주어진 권리였습니다. 한 로마의 시민이 그렇게 청원했을 때 재판을 중지하고 죄수를 로마의 법정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의 사건을 아그립바에게 설명함 (행 25:13-22)
베스도가 총독으로 임명 받은 직후에 아그립바왕이 그를 방문했습니다. 이 때 베스도는 그의 방문객에게 바울의 사건과 그가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 받기를 거부한 사실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그립바왕은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사건이 공개 됨 (행 25:23-27)
아그립바가 바울의 말을 듣고 싶다고 한 다음날에 사도가 일찍이 전도했을 때 모였던 청중들의 대부분이 모였습니다(행 9:15). 베스도는 비록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하나 그에게서 죽일만한 범죄의 단서를 포착할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바울이 가이사에게 재판 받고 싶다고 한 그의 청원을 알리고 아무런 죄목도 없이 한 죄수를 로마로 보내는 일에 대하여 겁이 났습니다. 베스도는 곤경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죄한 자에게 자유를 주어야 할 것이지만 이미 죄수가 가이사에게 호소했으므로 놓아줄 수가 없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바울을 송사하기 위한 어떤 자료가 생기기를 희망했습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앞에서 변명함 (행 26:1-29)
(1) 서론(1-3절)
바울이 발언권을 얻게 되자, 먼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는 아그립바왕 앞에서 자기를 변명하게 되어서 다행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2) 그의 경력과 바리새인에 대한 관계를 소개함(4-8절)
그의 초기 생활이 유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간단히 소개하고, 다음에 바울은 어릴 적부터 바리새인으로 자라났을 뿐 아니라 아직도 그 종파의 가장 중요한 교리가 되는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그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도전하였습니다.

(3) 박해자였던 그의 과거를 회상함(9-11절)
죄수는 과거에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박해했던 사실을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이러한 회상이 아그립바로 하여 속으로 "옳다 이 사람은 한 때 그리스도를 적대한 우리의 편에 가담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는 오랫동안 예수를 따르는 무리를 없애려고 애쓴 가족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도 요한을 죽임으로써 기독교를 박멸하려고 한 아리스도불러스 헤롯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머리를 자른 것은 그의 아저씨인 헤롯 안디바였습니다(마 14:1-12). 그의 할아버지는 베들레헴에서 어린 예수를 죽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해 버린 대헤롯이었습니다.

(4) 그가 예수를 만남(12-28절)
다음에 사도가 서술한 발언은 그가 그리스도를 박해하다가 결국 그의 충성된 종으로 바뀌게 된 이유를 제공해 줍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에게 나타나신 주님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울은 주의 말씀을 듣는 자가 사단의 세력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될 뿐 아니라 죄 사함을 받게 된다는 사실의 증인으로 세움을 받게 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의 변명 가운데 이 부분은 그가 하나님의 위임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임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진리를 말한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부인할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의 최선을 다해서 아그립바가 복음에 흥미를 갖도록 노력했습니다.

(5) 전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19-23절)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소명 때문에 그가 전도자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후에 사도는 "아그립바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하늘에서 보이신 것에 대하여 그가 더욱 충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6) 결론과 발언이 중단됨(24-29)
베스도는 더 이상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박해자였던 자가 박해를 당하게 된 자로 자기의 운명이 바뀌게 된 것을 회상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재판정에 와서 자기의 무죄를 변명할 기회를 주었더니 오히려 거기에 배석하고 있는 재판관들을 개종시키려고 할 만큼 자기 신앙에 투철한 사람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바울이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인 것을 아는 베스도는 그가 미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다"
사도 바울은 아마 베스도의 격노한 외침은 그 자신이 곤경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답변하였습니다.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아그립바를 향해서 바울은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의 설득력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아그립바는 "네가 나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는도다" 라고 항거했습니다. 바울이 설교한 목적은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설교한 오직 하나의 목적이었습니다.

아그립바는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게끔 설득을 당했으나" 그러나 그가 복음을 곧 받아들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자기의 뜻을 바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노래인데 가장 비극적인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제목과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거의 설득을 당했으나 ―"
추수가 지나가 버렸다.
거의 설득을 당했으나
드디어 심판의 때가 왔다.
저 비통한 울음소리
거의― 그러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이 발언에 대한 의견 (행 26:30-32)
바울의 변론이 끝났을 때 그는 자기의 감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재판관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검토해 본 결과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만한 이유가 없다"는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더라면 놓아줄 뻔 하였다"고 아그립바는 변명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항해함
(1) 가이사랴에서 미항으로 감(행 27:1-8)
바울과 다른 몇 사람의 죄수들은 로마로 송환되기 위해서 백부장 율리오에게 넘겨졌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탄 배는 가이사랴를 떠난 다음날 시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친절하게도 바울에게 교회의 신자들인 친구들을 방문하여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무라성에서 그 일행은 이달리아로 갈 때 배로 옮겨졌습니다. 그 배는 밀을 싣고 있었는데 276명의 사람들을 태울 수 있을 만큼 큰 배였습니다.(행 27:37-38) 그 배는 그레데 해안을 통과하여 미항을 향해서 천천히 나아갔습니다.

(2) 항해의 계속 여부에 대해서 의논함(행 27:9-12)
바울은 봄이 올 때까지 항해를 계속하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미항은 겨울에는 지내기가 불편한 곳이었으므로 뵈닉스로 가기로 결정되었습니다.

(3) 풍랑을 만남(행 27:13-44)
출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배는 광풍에 밀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이와 같이 공포와 절망에서 떨고 있을 때 바울은 그들에게 위로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위험을 미리 경고했던 사실을 그 동료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그들 모두가 구원을 받으리라는 계시를 받았으므로 조금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고 동료들을 위로했습니다. 그 배는 14일 동안이나 풍랑이 격심한 바다의 한 복판에서 표류되었습니다.

바울은 굳은 신념을 가지고 배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결코 실망하지 말고 음식을 먹으라고 격려했습니다. 사도는 떡을 들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이와 같은 침착성은 공포에 떨고 있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도 음식을 먹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배가 암초에 걸려서 파선되었을 때 거기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무사히 육지로 헤엄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4) 멜리데에서 체류함(행 28:1-10)
산산 조각이 난 배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모든 사람들이 해변에 닿았을 때 그들은 멜리데섬(현재 말라섬으로 알려져 있음)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많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그들은 불을 피워서 조난자들을 따뜻하게 해 주기도 하고 젖은 것을 말려주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일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을 함으로써 그의 손이 더러워져 그의 권위가 떨어진다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불을 오랫동안 계속해서 피우기 위해 즐거이 나무를 주우러 갔습니다. 그가 나무 한 단을 불에 넣자 그 나뭇단에 붙어있던 독사 한 마리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기어 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은 그러한 뱀에게 물리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살인한 자이므로 그가 비록 바다에서는 간신히 살아날 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의의 하나님께서 드디어 그에게 죽음을 선고하신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놀라운 사실은 바울이 뱀에게 물렸으나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반드시 로마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행 23:10).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전도자를 잘 돌봐주셨던 것입니다.

"이 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는 바울을 영접하여 사흘 동안이나 유숙케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서 보블리오의 아버지가 병으로 앓고 있는 것을 고쳐서 낫게 해 주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명성이 그 섬에 널리 퍼지게 되자 다른 병자들도 그에게 찾아 왔는데 바울은 그들도 모두 고쳐주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때에 바울이 전도를 했다고는 쓰여 있지 않으나 그가 과거에 한 일로 미루어 보아 여기에서도 계속 예수를 증거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가 베푼 여러 이적들은 아마 모두가 그의 전도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들이었을 것입니다(히 2:1-4).
드디어 항해가 시작되었을 때 섬사람들은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다주었습니다.

(5) 항해가 계속됨(행 28:11-16)
석 달이 지난 후 바울은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에 의해서 그 곳의 당국자들에게 인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놀랍게도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그는 집을 한 채 빌리도록 허락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그를 감시하는 군인이 다만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즉 죄수를 취급하는 방법으로 대접 받은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스도가 바울에게서 어떠한 범죄 행위도 발견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호송인 율리오가 바울이 로마에 오는 항해 도중에 보인 모범적이고 훌륭한 행동을 보고 그를 존경하여 바울을 관대히 취급해 달라고 로마 당국자들에게 부탁을 했기 때문었습니다.

(6)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만남(행 28:17-28)
바울은 로마에 도착한 즉시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가 유숙하고 있는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자기가 유대인들에 의해서 투옥되기는 했으나 자기는 유대인들에게 아무런 해로운 행위도 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는 로마의 집권자들이 그를 석방하려고 했을 때 유대인들이 그것을 방해했기 때문에 가이사에게 송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사실도 이야기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유다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보고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당파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자 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교회가 어떤 하나의 당파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울의 생각과는 정반대였던 것입니다.

로마의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좀 더 자세하게 듣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방문하기로 약속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후에 다시 찾아왔을 때 사도는 그들에게 교회와 교회의 머리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모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유대인들 가운데는 믿는 자도 있었고 믿지 않는 자도 있었습니다.

(7) 바울이 죄수로 로마에서 2년 동안 체류함(행 28:30-31)
이렇게 해서 사도의 역사는 그 막을 내리게 됩니다. 성령에 의해서 이 책(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그 당시에 세계의 끝으로 알려져 있던 서반아까지 점진적으로 퍼지게 된 경과를 소개했습니다.
이 거룩한 역사에 관해서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끝을 맺기로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여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불멸의 전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 아멘!

무엇이 참된 것인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오직 한 번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를 위해서 미리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지상명령입니다. 당신이 영혼 구제 문제에 관해서 한 번 과오를 범하게 되면 그 대가는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개종은 참된 것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너 자신을 예수께 바치고 그분을 너의 구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너무 막연한 해답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것이 될까요? 우리의 구원을 확실히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즉, 사도행전을 기록한 목적은 1세기경 하나님께서 보내신 전도자들에 의해서 개종한 사람들의 경우를 설명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20세기에 사는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본보기가 되는 것들입니다. 복습으로 우리는 아래와 같은 도표를 소개하여 우리가 공부한 이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이 어떻게 주님께로 나왔는가를 보여 드리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구원의 계획>




만일 당신이 이러한 절차를 모두 밟았다면 당신의 개종은 참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면 설령 당신이 아무리 도덕적으로 건전하다 하더라도 구원은 받지 못합니다. 물론 개종을 한 후라도 우리가 최후에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자 원한다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계 2:10).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이 세상의 구세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께서는 과연 당신의 구세주도 되시는지? 만일 당신이 아직도 죄 가운데 살고 있지만 주께서 당신에게 기대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기만 한다면 우리는 당신을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주 예수의 종이 되도록 우리의 있는 힘을 다해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엇보다도 훌륭한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을 하다가 그리스도인으로 죽어서 드디어는 영생의 축복 받으시기를 간절히 권하는 바입니다.
페이지 설정에서 여백 크기 조절 후 인쇄하세요.
   

BCC 소개 | 뉴스레터 | 찾아오시는 길 | 개인정보 보호정책 | TOP ▲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