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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시험
  연구과 (예수의 생애와 교훈) - 3 과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나가사(마태복음 4:1).”

성경이 기록된 후 수세기 동안은 장절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4:1의 “그 때에”란 시간의 표시는 예수가 세례 받으신 직후 40일간 금식하시고 시험을 받으셨음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그가 배고픈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는 예수를 타도하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사단은 지극히 간교합니다. 언제나 자기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시기를 포착합니다. 사단은 사람의 “믿음이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 전에 유혹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마귀가 인간을 유혹하는 것을 방관하시거나 인간이 거기에 빠지는 것을 허락지 않으십니다. 다만 인간 자신의 욕심에 의해 미혹 당하는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이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유혹을 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2~12).” 인간이 유혹을 이겨내면 오히려 유익이 됩니다. “이겨낼 수 있다면(능력)”이 아니라 “이겨낸다면(의지)”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인간의 유혹은 언제나 그의 능력에 따라서 조절이 됩니다. 우리가 유혹을 이겨내면 그것 때문에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사단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은 예수가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실 것을 미리 아시고 처음부터 예수로 하여금 그와 접전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일을 마귀는 기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다른 책들을 해석하는 방식으로 성경을 본다면 예수의 시험을 글자 그대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문맥 자체가 그 외에는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을 믿는다면 마귀의 인격성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창 3:1~5), (욥 2:1-2 참조). 구약성경은 사단의 인격성에 대해 말합니다. 신약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첫 조상이 받은 시험에 대하여 언급할 때 예수는 사단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만일 몸 안에 악령이 있음을 시인한다면 몸 밖에도 악령이 존재함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악령들 보다 더 “지독한” 악령이 있다면 최고의 악령 또한 있음이 명백합니다. 예수는 그 악령을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술가들은 사단을 묘사할 때 긴 꼬리에 날카로운 창을 손에 들고 있으며 머리에는 뿔이 달려 있고 어깨에는 쇠로 만든 줄이 감겨 있는 괴물로 그립니다. 이것은 잘못된 묘사입니다. 사단은 결코 이러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와에게는 뱀의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욥에게는 아마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예수께 나타난 마귀의 형상이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짓 형상을 꾸며서 나타난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마 “빛의 천사”로 나타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것은 사단에게 가장 중대한 싸움이었던 까닭에 전략에 있어서도 최고의 기술을 발휘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광야에서 예수가 금식하신 사건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드는 추측들이 많습니다. 그가 장차 성취해야할 위업에 대하여 명상하실 목적으로 휴식을 취하셨는데 그 임무로 인하여 몹시 초조해하셨던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경청해 봅시다. 마태는 “그가 성령에 이끌리어 시험을 받으러 가셨다.”라고 말합니다. 누가는 “그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으며 이 기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가 단순한 사색이나 명상 이상의 중대한 문제를 갖고 계셨음을 말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단의 세 가지 시험은 그 절정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금식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40일이 넘도록 금식한 사람의 수가 적지 않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40일이 되자 그는 “주리셨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가 그 전까지는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으셨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굶주림에서 오는 고통의 정도가 어느 때보다 더 심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공포, 분노, 비애, 근심 등의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면 우리는 그 위기가 지날 때까지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도 고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가 인류의 숙적인 마귀와 필사적으로 투쟁하실 때 이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최후의 승리를 인간에게 주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것입니다. 예수가 아버지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오랫동안 식사를 못하신 경우가 이외에도 여러 번 있습니다. (요 4:3~34), (막 3:20) 참조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예수는 공복에 의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사단은 더욱 간교한 방식으로 그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치명타를 가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이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범죄 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가 죄를 범할 수가 없다면 유혹을 받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가 만일 유혹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인간처럼 이겨내기 힘든 유혹을 받을 수는 없었을까요? 우리는 그가 비록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계셨으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8)”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신적 영광을 버려두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7, 9).”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따라서 예수도 시험을 받으실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인간의 형상과 성품을 타고나신 그는 피곤과 굶주림과 갈등, 추위, 슬픔과 절망이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안이 됩니까?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그러나 만일 예수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신성을 지니고 계신 반면에 우리 인간에게는 그러한 요소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게 될 때 우리는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은 마귀가 예수께 행한 간교한 시험입니다. “만일”이란 것은 마귀가 예수의 신성을 의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마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았고 예수 또한 그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만일”이 언제나 가정을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 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그가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을 갖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의 정체를 감출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이란 용어는 그가 예수의 세례 장면에서 성부의 음성을 들은 자 가운데 하나이거나, 또는 그 사건을 거기에 참석했던 제삼자를 통해서 들었다는 사실을 예수께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일”이 예수의 신성을 비난하기 위해서 쓰였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당시 사단이 의도한 생각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즉, “나는 네가 누군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네가 최근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받은 자임을 알고 있다. 진정 네가 그러하다면 왜 굶주리고 있는가? 이 돌을 명해서 떡이 되게 한 후 너의 식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너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를 바라시는지도 모른다.” 분명히 사단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그의 음모가 쉽사리 탄로 났을지 모릅니다. 사단은 이러한 방식을 취하기에는 너무나 꾀가 많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예수가 이적을 행하는 것을 보고 싶어 했습니다.

만일 예수가 사단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면 그것은 죄가 됩니다. 실제로 그 시험 가운데는 회의적인 요소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이제 너도 알다시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는 네가 그처럼 오랫동안 음식을 못 먹게 내버려두지는 아니 하실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다면 지금이야말로 그 사실을 증명할 때이다.” 마귀는 예수를 유혹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교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귀가 예수에게 다음과 같은 인상을 주려 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이치에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 너는 마귀와 싸워서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구나. 너는 이 승리로 큰 용기를 얻었구나.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아들에 대하여 얼마나 만족히 여기고 계시겠느냐. 그러나 지금 너는 대단히 지쳐있고 음식을 먹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이제 싸움은 끝났다. 그러니 너의 아버지께서는 네가 너의 힘을 다시 회복하기를 원하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 더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매한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자신이 또 다시 유혹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사단이 노골적인 도전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40일이 지난 뒤에 그를 완전히 굴복시키기 위해서 마귀는 계획적이고 교활한 방법으로 그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는 영적인 힘을 얻기 전에 육체의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떡을 먹는다는 것이 잘못임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때까지 예수의 식욕을 만족시켜 주지 않으신 데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생명은 육체적 쾌락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육체적 굶주림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굶주림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귀가 이 모든 시험을 마친 후에” 예수의 영적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첫 번째 싸움에서 극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패배를 자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공격을 가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려 갔습니다. 그가 어떻게 예수를 데려갈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곳 도시에 도착하여 그는 “성전 꼭대기”로 끌려 가셨습니다. 성전의 동쪽에 위치한 솔로몬의 행각이 그 당시 시험을 받으신 장소라고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그 밑에 있는 계곡까지는 150미터가 넘습니다. 여기서 마귀는 다시 한 번 지극히 간교한 방법으로 그에게 도전해 왔습니다.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만일”이라고 한 것은 전에 유혹하면서 “만일”이라고 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사단은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유혹을 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시편 91:11,12의 말씀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시 91:11-12)”를 인용하였습니다. 아마 그는 이렇게 말하려고 한 듯 합니다. “이미 너는 시험을 받았을 때 네 아버지의 뜻을 순종했다. 너는 너의 원수를 정복해 버렸고 하나님께서는 네가 세례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의 승리를 만인 앞에서 공인을 받게 하시려고 너를 예루살렘으로 데려왔다. 그러니 이제 너의 때가 온 것이 아니냐? 네가 아는 바와 같이 그는 너를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한번 뛰어내려 보아라. 네가 만백성이 주목하는 앞에서 점잖게 뛰어서 땅위에 사뿐 내려앉는다면 무리들이 너를 열광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너를 그의 아들로 인정하신 사실을 아는 그들은 너를 메시아로 받들어 모실 것이다.” 첫 번째 유혹은 불신의 뜻이 내포된 반면에 두 번째의 유혹은 “과신”의 요소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마귀가 성경 말씀으로 그의 입장을 변명하려고 한 것은 예수의 행위를 좌절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번 예수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신 6:16).” 예수의 올바른 판단과 성경에 대한 탁월한 지식은 그의 위치를 공고하게 지켜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고의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죄가 됩니다. 가끔 우리는 자기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독사를 만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으나 이러한 행위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예수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하나님께서 적당한 시기에 그 사실을 적절하게 증명해 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께 이 문제를 조급히 요구한다는 것은 죄가 될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모두 실패하자 사단은 더욱 필사적으로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만일 성공한다면 그것은 그의 궁극적 승리에 대한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실패한다면 그것은 그의 세력이 끝나는 전조가 될 것입니다. 4000년 동안이나 그는 이 세상에서 검은 깃발을 휘날렸습니다. 그의 능력을 측정하는 최후의 시금석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의 적수를 데리고 유대의 가장 높은 산으로 올라가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판도를 가리켰습니다. 그리고는 한 국가를 통일시키고 세계의 영토를 정복할 수 있는 왕의 출현을 온 나라의 백성들이 대망하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로마와 그 찬란한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푸른 빛나는 지중해를 멀리 가리켰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테네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했습니다. 북쪽에 위치한 앗시리아의 다메섹, 동쪽의 바빌론, 수산 및 유프라테스 계곡과 페르시아 전역도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쪽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비옥한 나일강변 및 애급 전역을 소개했을 것입니다. 실로 그것은 장관이었습니다. 세속적인 야심가라면 자기의 영혼과 맞바꾸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당신은 이 왕국을 갖고 싶은가? 마음대로 가져도 좋다. 온 세계를 소유할 수 있다. 물론이다.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듣는가?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는 말을…. 네가 당할 고통, 수치, 잔인한 박해를 감수할 필요도 없다. 온 세상은 나에게 주어졌다. 내가 원하면 누구에게나 그것을 줄 수 있다. 다만 내가 너한테 바라는 것은 지극히 간단한 수고뿐이다. 엎드려서 나에게 절을 하라. 그러면 이 모두가 네게 돌아갈 것이다.” 참으로 매력적인 제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가 그의 도전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셨든지 그가 속지 아니하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사단이 아니고는 아무도 이처럼 담대한 시도를 해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사단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용한 수법은 그의 마음에 불을 지르고 피를 뜨겁게 했습니다. 야심이나 자만이 아닌 의로운 분노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예수는 분연히 그에게 돌아서서 그의 위장을 벗겨 버리고 정체를 폭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원수를 향해서 신랄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무기로 삼으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신 6: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사단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타격이었습니다. 뿌리에서부터 그의 세력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는 설자리가 없도록 영원히 패배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 사단의 왕국은 소멸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과정은 “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패배한 후부터 사단의 왕국은 그 종언을 고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실로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귀가 “이 세상 만국”을 남에게 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에게 “이 세상 만국”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그것은 예수에게 유혹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히 사단이 누구이며,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으니 내가 원하면 누구에게나 그것을 줄 수 있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진실을 말한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통치자들을 일으키실 수도 있고 넘어지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단 4:5). 그 당시의 사악한 제왕들과 황제들은 이 사실에 대해 살아있는 증인들이었습니다. 만일 예수가 마귀의 신전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했다면 그의 명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은 아무런 의견갈등 없이 그를 세상의 임금으로 떠받들었을 것이라고 믿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그것을 대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심지어 예수를 억지로 왕으로 추대하려고까지 했습니다(요 6:15). 그러나 예수는 지상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마 마귀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귀가 싸움터에서 물러갔을 때, 천사들이 와서 그에게 시중들었습니다(막 1:13). 우리들의 제한된 안목으로 보면, 천사들이 예수에게 승리가 주어질 때까지 초연하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 홀로 포도즙 틀을 짜도록 버려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패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의 육체적 정신적 굶주림은 이제 면하게 되었습니다. 보상은 노력에 비례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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