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분부를 지켜서 사도들은 약속한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1:5). 사도행전이 쓰일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과 같은 몇 장 몇 절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후대에 우리의 성경 연구에 편리를 도모키 위하여 구분 되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26절과 2장 1절을 읽어 보면 맛디아와 열 한 제자들만이 약속한 성령을 받았을 뿐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120명 전체가 약속한 성령을 사도들과 함께 받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행 2:1-4) '오순절'은 유대인들이 해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세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신 16:16-17). 유월절 이후 꼭 50일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성령이 사도들에게 임할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강한 바람 자체가 아닙니다. 그것과 닮은 그 무엇이었습니다. 강한 바람이나 또는 폭풍우는 인간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지만 기적적인 그 무엇은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사실은 바람이 있을 리 없는 방안에 강한 바람과 같은 이상한 힘이 용솟음쳤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으며 성령이 그들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 반응 사도행전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에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왔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들이었습니다(행 8:2, 눅 2:25). 그러나 이런 무리들 가운데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자들도 섞여 있었습니다(행 2:22-23). 물론 저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당시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하여 진실하였습니다(행 3:17). 진실한 마음으로 행했다는 이 희귀한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만일 어떤 사람이 믿음과 실행에 있어서 진실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영원히 폐지시키게 됩니다. 사람들이 진실로 믿고 행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차이가 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경건 되고 진실한 사람의 행위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가 믿는 대로만 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즐겁게 할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들이 각각 자기들의 방언으로 하는 말을 듣고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성령은 이와 같이 사도들에게 각각 다른 방언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각국에서 모여들었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모두 사도들의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이 때 사도들이 행했던 그와 똑같은 성령의 권능을 우리들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도들과 그들 사이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도 당시에 모였던 사람들은 사도들의 말씀을 깨달았지만 오늘날 이 같은 능력을 행할 수 있는 자라곤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예루살렘에 우거했던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에게 나타난 이 기적을 봄으로써 저들의 반응을 표현하는데 여러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즉 말하자면 저들은 자기들의 방언으로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각각 '소동하였고' '놀랬고' '기이하게 여겼고' '의혹하였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대략 열다섯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사도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들의 말을 들은 저들은 "어쩐 일이냐"고 서로 묻기 시작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롱하면서 "새 술에 취했다"고까지 비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과연 어리석은 비난이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술 취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말을 잘 못하는 것이 통상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말을 더 잘한다고 하여 술에 취했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베드로의 설교(행 2:14-36) (1) 소개의 말: 기적을 설명함 (행 2:14-21)
이제 우리들은 당시 무대의 한 장면을 연상해 보듯 이 때에 되어진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은 서 있고 그 말을 들었던 무리들이 함께 모여 웅성대고 있습니다. 저들 가운데엔 사도들의 방언 말함을 거짓된 행위로 속임수를 쓴다는 비방의 말을 지지하는 편이 많아져 가고 있습니다. 이 때에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후 첫 번째로, 즉 첫 복음을 전파키 위하여 앞으로 나섰습니다. 사도들을 조롱하는 무리들의 말에 대한 답변을 서두로 꺼내어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때가 단지 삼시(아침 9시)이므로 이는 술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취했다고 비난하는 무리들의 사고방식이 옳지 못함을 지적했습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술에 만취되어 있다는 것은 있음직한 일이 못됩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낮에 보다 밤에 술 취하기 때문입니다(살전 5:7).
그리고 베드로는 구약 요엘 선지의 말씀을 인용하였습니다. 그 예언이 자신들에게 성취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사도들의 행위에 진실성을 제시했습니다. (요엘서 2장을 참고 하십시오. 특히, 베드로는 (요엘서 2:28-31)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 주시리라는 그 예언이 사도들에게 와서 성취되었음을 그 당시 모인 무리들에게 해명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베드로 설교의 소개말은 사도들의 성령 충만한 행동은 하나님의 역사에 의함이 분명하게 증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① 이와 같은 사도들의 방언은 결코 술 취한 결과라고 생각 될 수 없었으며 ② 선지자 요엘이 이미 오래전에 사도들이 그 같은 성령에 충만해질 것을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2) 베드로의 설교 요지 (행 2:22-35)
베드로의 설교는 네 개의 독특한 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① "그리스도는 너희 가운데 살아계시며 큰 권능을 행하셨던 자니라(22절)"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이적과 권능들은 "너희도 아는 바"라고 지적함으로써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베드로는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이 이상 더 입증할 필요성이 없어졌습니다.
② "너희(유대인들)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느니라(23절)."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무엇이라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죽였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라고 생각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친히 예수님을 죽인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악한 행위에 동참했습니다. 그 도구로서 법 없는 자들의 손(빌라도와 로마 병정들)을 빌렸다고 베드로는 지적했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죄가 저들 자신에게서 떨어질 수 없음을 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다는 베드로의 말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의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즉 베드로는 이와 같은 말을 함으로써 예수께서는 힘이 연약하여 자신을 구하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할 수 없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교정한 것입니다.
③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24-32절)"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는 그리스도를 풀어 주셨기 때문에 무덤이 결코 예수님을 붙잡아 둘 수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유대인들은 불신했고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베드로는 그것을 해명코자 다음과 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말을 계속했습니다.
□ 다윗은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임
사람의 육신이 썩기 전 부활할 것이라고 예언한 다윗의 증언(시 16:8-11)을 베드로는 인용했습니다. 다윗의 이 같은 증언을 읽어 본다면 다윗이 자기 자신을 두고 말한 것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죽어서 장사되어 그 묘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자신을 두고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될 수 없음을 베드로는 강조했습니다(행 2:29-31). 유대인들 중에 다윗 왕이 부활했다고 생각할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보고 그 사실에 대하여 예언할 수 있다함을 타당하게 신임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모범적 인물로 알고 있는 다윗을 들어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저들에게 확고한 어떤 신념을 갖게 하는데 가장 유력한 증언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저들을 향해서 다시 말합니다. 예수께서 다윗의 예언대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저들이 받아 들여야지 그렇지 못할 경우엔 다윗을 거짓 선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의 중요한 발언을 했었습니다.
□ 사도들도 그리스도 부활의 증인임(행 2:32)
열 두 사도들보다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을 더 잘 알만한 자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도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 거짓 증언을 해야만 했는가 하는 이유를 우리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들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물질적 이득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도리어 비난과 조롱, 보다 더 핍박의 대상이 되는 그 교리를 이상 더 전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말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대항하는 적들을 대면하여 자기 자신들의 생명을 내걸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의 충만한 권능을 부여해 주심으로 각 나라 방언을 말하게 하여 이 위대한 진리를 청중들이 의심 없이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저들을 인도 했었습니다.
□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의 증인임: 그는 지금 하나님 보좌에 높이 앉아 계심(행 2:33-35)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그가 행하신 일들을 열거하므로써 그리스도 자신이 부활의 한 증인임을 역설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 손으로 높이심을 받으셨고 그가 약속하신 언약에 따라 성령을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바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며"란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음은 자신에게 임한 성령의 증언에 의함이 분명합니다. 베드로의 증언은 주께서 허락하신 성령의 직접적인 증언임이 분명하며 그 성령은 예수님이 앉아 계시는 하나님 우편 보좌에서 강림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는 다윗이 이미 이 사실을 예언하였다는 것을 실례로 보여 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보좌에 높이 앉혀진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을 두고 그런 예언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두고 예언함이라는 것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결론(행 2:36) 베드로는 유대인들, 바로 너희들이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그는 다시 살아나시어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높이 앉아 계신다고 선포했습니다. 위대한 이 사실을 저들에게 반박할 여지없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베드로는 청중의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과 께름칙한 생각을 일으켜 준 체 그의 설교를 끝맺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청중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므로 구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려는 의도로써 설교를 시작했지만 그 사람들이 구원 받기 위해 무엇을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 설교를 끝마쳤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의 방법을 저들에게 제시해 줌으로써 설교를 끝마쳤다고 한다면 베드로는 저들의 조롱과 비웃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설교한 구세주 그리스도를 바로 얼마 전 저들(유대인들)이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저들이 이와 같은 큰 죄악을 저질렀다함을 깨닫게 해 주었고 그 나머지의 문제엔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베드로의 설교 요지를 추려서 생각해 보십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는 지상에 계실 때 큰 이적들을 베푸셨느니라. 너희는 너희 맘대로 그리스도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우리 사도들이 증언하는바 그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도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심이 사실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임이 분명하며 너희는 그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무서운 살인범들이니라"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BCC | 서울시 강서구 방화1동 180-14 7F | 비영리법인번호:109-82-03052 | Tel (02) 2662-0793, 2662-8081 | Fax (02) 2662-8082
Portions are Copyrighted 1964-2026 BCC. Contact us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