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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천명의 개종
  연구과 (사도행전) - 4 과
베드로가 행한 설교에 대한 반응 (행 3:37-41)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죄들로 마음에 찔림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한결 같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에 대답을 준 베드로의 말에 순종할 때 많은 무리들이 그리스도께로 개종하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가 끝난 다음 일어난 반응을 저자 누가는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라는 아주 짤막한 말로 간단명료하게 잘 묘사했습니다.

이 사실은 곧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롬 10:17)는 사실을 잘 설명해 줍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내가 믿나이다" 라고 말할 때 그 원인을 성경적으로 규명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가 그 자신의 믿음에 대한 사실을 성경적으로 규명 지을 수 없다면 그는 그가 참된 믿음의 표현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의 소견을 피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무리들은 "우리가 어찌할꼬" 했습니다.

베드로가 줄 수 없었던 답변들
(1) "너희가 행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노라"고 베드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면 너희는 "구원을 받으라(행 2:40)"고 권면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받을 만한 구원의 길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여러 가지 조건에 따르지 않아도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저들이 할 그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마 7:21-29), (눅 6:46), (계 22:14).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오늘날 칼빈주의자들이 추종하는 예정설 즉 하나님께서 미리 구원 얻을 자와 잃어버림(멸망) 받을 자를 저들의 행위에 아무런 관련 없이 예정하셨다는 사실은 전연 생각지 않았습니다.

(2) "너희는 믿음을 갖고 믿는 그 순간부터 구원을 받았다"고 베드로는 말하지 아니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믿음만'으로 사람이 구원 될 수 있다고 하는 교리를 전제로 하여 이룩되는 많은 교파교회 주장들을 분명히 부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믿음 만으로가 아니라 믿음의 순종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야고보는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고 언명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사람은 믿음과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갈 5:6), (약 2:14-26).

(3) "오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희를 위해 기도하리라" 또는 "기도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용서하시리라"고 베드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상과 같은 말은 오늘날 설교자들이 보통 대중 앞에서 죄인들을 향하여 발하는 언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까?"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대답했던 말과 꼭 같은 대답을 한다면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큰 신뢰와 힘을 줄 것입니다. 불신자들에게 기도가 저들을 구원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는 결코 없습니다(잠 28:9), (약 5:16). 기도란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자들에게 부여된 특권이며 의무이기 때문입니다(벧전 3:12)

베드로의 답변: 두 가지 분부를 주심
(1) "회개하라"고 분부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일까요? 회개란 죄에 대한 단순한 후회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은 "우리가 어찌 할꼬" 물을 만큼 죄의식을 느꼈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깊은 죄의식에 빠져있는 무리들을 향하여 베드로는 "회개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신바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마 21:29-31)" 둘째 아들이 물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그 둘째 아들은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뉘우치고(회개) 갔습니다. 그가 가게 된 이유는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죄에 대한 후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보다 더 훌륭한 생활의 변천을 이룩하게 하는 마음의 변화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을 벗고 변화된 새 생활을 이룩하기 위하여 보다 더 값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무리를 향하여 "회개하라"는 분부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향하여 내리시는 명령이십니다.

(2) "세례를 받으라"고 분부하였습니다.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할 때에는 세례를 받아야만 됩니다. 회개하고 믿음을 가진 자는 누구든지 지체 없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회개에 대한 결과이며 행위입니다. 이 분부 역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향하여 내리시는 절대 명령이십니다.

두 가지 약속
위에 말한 바와 같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1) 죄 사함을 받는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죄 사함" 이것이 곧 믿고 회개하고 세례 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첫 약속입니다. "죄 사함"이라는 것은 믿고 회개한 자가 받아야 하는 세례의 목록입니다. 베드로의 말 가운데서 사람들이 이미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사상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무리들을 향하여 "새 자동차를 갖기 위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입니까. 회개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을 얻기 위하여" 세례를 받아야 함이 분명합니다.

(2)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성령의 선물"은 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자에게 두 번째로 부여되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그와 함께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2장 39절에서 베드로는 이 축복이 "먼데 사람" 곧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에게도 미친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와 오늘날 설교자들 간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차이는 베드로는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아주 정확하게 말했다는 점입니다. 즉 그는 죄인들을 향하여 믿고 회개하여 세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설교자들은 "너희가 회개하고 너희 마음을 예수님께 바쳐서 그를 너희 구주로 모셔 들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죄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지만 구원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베드로와 달리 막연히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라"고만 가르친다면 이것은 분명히 구원의 길을 인간들에게 제시해 줌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큰 잘못됨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작자 누가는 베드로의 권고와 확증하는 말을 들은 많은 무리 중에서 3,000명의 사람들이 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오랜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파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순절날 예루살렘에 모였던 사람들 중 3,000명이 모두 침수 세례를 받을 수 없었으며 3,000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을 침수로 세례를 줄만한 장소가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침수 세례를 반대해 오고 있습니다. 저들의 이런 주장의 의도는 3,000명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머리에 물 뿌림을 받는 약식 세례를 받았다는 것을 역설하여 관수 세례(약식) 의식을 강조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성경은 침수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적합한 많은 못이 예루살렘과 예루살렘에 아주 인접한 주위에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 가운데 하나가 실로암 못 입니다(요 9:7). 이 못은 길이가 50피트 넓이 16피트, 그리고 폭이 물밑까지 이르는 4피트로서 침수 세례를 받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의 하나입니다.

교회의 발전 (행 2:42-47)
2장 42절은 초대교회 제자들이 실천했던 예배 행위를 서술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 예배 행위란 ① 사도들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의 청종 ② 신자 상호간의 교제(헌금) ③ 떡을 떼는 일(주의 만찬) ④ 기도하는 일 ⑤ 찬송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이상의 다섯 가지 행위는 오늘날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예배 행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초대 교회의 실정을 말할 때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7)"고 기록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저들이 주님의 요구하시는 바 그 뜻에 순종할 때에 주님께서 저들을 자동적으로 교회에 더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교회 밖에서 구원 받을 수 있었던 자라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구원받을 자들이 교회를 구성했으며 저들이 교회에 날마다 더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교회 안에 어떤 사람이 교회 밖의 어떤 사람에게 교인이 되게 할 자격을 부여하며 결정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죄인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님만이 저를 교회에 더하실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주님은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으시며 불의한 자를 자기의 교회에 더하시지 않으십니다.

요약
(1) 3,000명의 개종
1)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들음
2) 주님의 부활을 믿음
3) 죄를 뉘우치고 회개함
4) 세례를 받았음
(2) 결과
1) 죄 사함을 받음
2) 성령을 선물로 받음
3) 주님의 교회에 회원이 됨
(3) 결 론
1) 우리들도 저들과 같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면
2) 저들이 받았던 약속을 우리도 받을 수 있음

다음 공과 예습
사도행전 2:43은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음 공과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적들 가운데서 저자가 취재한 몇 가지 이적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자연히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내용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며 외부적인 핍박이 주님 교회에 가해지는 사실에 대해서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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