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인 거지가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은 사실은 자연히 많은 군중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되어 많은 무리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게 된 것은 저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시어 높이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사실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들에게 예수로 말미암아 이룩될 구원을 제시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잡힘(행 4:1-4)
베드로의 설교는 유대 관원들이 몰려와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둠으로써 일단 중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까지 저들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초대 교회를 대항하는 이 같은 최초의 박해는 ① 제사장들 ② 성전 맡은 사람 ③ 사두개인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성전 맡은 사람'은 성전을 지키는 사람들의 수령인데 레위 지파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저들의 임무는 성전 및 그 기물(器物)들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유대교의 한 당파로서 죽음에서의 부활을 불신하며 부정하는 자들입니다(마 22:23), (행 23:8) '바리새인'들은 또 다른 하나의 유대 당파로서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행 23:8). 유대의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예수에 대하여 백성들을 가르침을 근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저들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반대한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파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훈은 사두개인들의 믿는 사상과 정반대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는 베드로의 설교에 대한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우리들은 이 5,000이라는 수가 그 날에 새로 믿게 된 자를 말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오순절 이래 이날까지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5,000이 되었음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베드로의 변호 (행 4:5-12)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던 그 다음날 저들을 심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유대인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안나스와 가야바라는 이름이 이곳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안나스는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고 요한은 기록 하였습니다(요 18:13). 그 당시 로마의 관권에 의해 안나스가 파면되었다는 증거는 없으나 가야바는 로마 정권에 의해 유대의 대제사장으로 추대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안나스가 당시, 비록 정권에 의해 대제사장의 실권이 없어졌다 할지라도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4장 6절에 나타난 요한과 알렉산더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아마 저들이 당시 권력 있는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사도를 가운데 세우고서 저들은 "너희가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문책했습니다. 이 사실을 본다면 재판석에 앉은 자들이 사도들이 행한 이적을 부정할 수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들은 거지 앉은뱅이가 어떤 특수한 명목이나 권세에 의하여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긍정했었습니다. 이로 보아서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 가둔데 대한 특별한 죄목을 잡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재판석에서 논의된 것은 사도들의 행한 바가 애매하다는 것 외에는 더 없습니다. "무엇으로 너희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하였느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다음 같이 되물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설교 말인가?" "이적 말인가?" "그 밖에 또 무엇 말인가?" 왜냐하면 저들의 질문에는 특별한 세목이 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기묘한 부정적 질문을 고안했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부주의로 오는 대답을 책잡음으로 저들의 고소를 정당화 해 보려는 희망에 의해서 취해진 행동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처음으로 이런 곳에 서게 된 것은 아닙니다. 얼마 전에 주께서 바로 이 재판 자리에서 재판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마 26:57-75). 그 당시 베드로는 그가 결코 주님을 배반치 않겠다고 맹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자리에 서서 과거와는 정반대로 아주 강하고 담대하게 자기가 부정했던 바로 그 예수님을 증거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재판석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며 저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는 문제였습니다. 사도는 저들이 그리스도를 죽이도록 공론하던 바로 이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저들 앞에 증거할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습니다. 베드로는 그와 요한이 앉은뱅이에게 선한 일을 행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선한 일로 인하여 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베드로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너희들이 의문하는바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너희들이 십자가에 죽게 했던 자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음에서 부활하게 한 자라고 베드로는 예수의 죽은 사실을 앞서도 두 번 역설한 바 있었습니다(행 2:23, 3:15). 그런데 지금 그는 이 책임을 집권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공회는 공식적인 어떤 법적 근거가 없이 베드로와 요한을 문책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저들 앞에서 저들이 메시아를 죽인 큰 죄를 범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시에서 인용함으로써(시 118:22) 베드로는 그의 고소자들에게 집을 건축하는데 주초를 놓는 건축자와 같음을 비유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에 의하여 버림을 받은바 그리스도는 도리어 머릿돌과 같이 저들에게 없어선 아니 될 존재가 되었음을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저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 천하 인간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위대한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이 진리는 우주적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 이외에 다른 구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른 중보자가 없다는 것은 신약 성경의 기본 교리입니다(딤전 2:5-6), (행 10:43).
공회는 휴회되고 개인적으로 타협함(행 4:13-17)
베드로는 아무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저들이 무식한 자로 알고 있던 바로 그가 이와 같이 담대하게 유대의 최고 공의회 석상에서 외치게 됨을 본 관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사도들은 지적인 면에 무식자들이 아닙니다. 여기에 저들이 말한 '불학무식'하다란 말은 단순히 저들이 정규적인 학파 또는 학교에서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뜻으로 사용이 된 것입니다. 관리들 자신들도 베드로의 이와 같은 담대함은 "예수께서 저들과 함께 하심" 때문이라 긍정했습니다.
공회에 모인 사람들에겐 고민과 수치감으로 인한 적막감이 흘렀습니다. 저들은 사도들이 한 일에 대해 대항할 아무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 하나도 베드로의 일에 반대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고침을 받은 앉은뱅이가 저들 가운데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저들의 입을 다물게 해 주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실은 오늘날 사도의 이적을 부정하는 자들의 입도 다물게 해 줄 것입니다.
저들은 사도들을 공의회석에서 잠깐 나가게 한 후 사건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저자는 저들의 이 같은 사적 모임에서 논의된 사항의 약간을 기술해 주고 있습니다. 저들은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게 된 이적을 솔직히 시인했습니다.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정직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이적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사적 회담은 그 다음 사도들을 불러 이야기한 사실과 결부해 생각해볼 때 또다시 위선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사람들을 공의로 판단한다는 사실을 무리들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시도했습니다. 실제로 저들은 사도들이 무죄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을 불러서 매를 때리고 다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지 말게 하자고 했습니다. 저들은 이같이 하면 다시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는 일을 중단하고 저들이 죽인 바 예수가 구세주 되신다는 설교를 듣지 않게 되고 모든 문제는 일단락 될 줄 알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전도함을 금지함 (행 4:18-22)
일단 휴회 시간이 끝났고 사도들은 다시 호출 되었습니다. 재판관들은 엄격하게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전파하지 말 것을 언명했습니다. 만일 사도들이 그 말에 순종했다면 공의회의 위신은 수립 되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공공연하게 저들 판단의 정당성의 가부를 문의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베드로는 실로 강하게, 또 신중하고 엄숙하게 이 같은 중대한 발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끝냈습니다. 이같이 하여 사도들은 모든 후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위하여 좋은 선례(先例)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인간의 법이 서로 상반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그리스도를 좇는 모든 사람들은 국가의 법에 순응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법에 상반되는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한 무엇이든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산헤드린의 오만한 태도를 지닌 저들은 겸손하고 또한 담대한 사도들의 항변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마침내 저들은 사도들을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여" 석방하고 말았습니다. 사도들이 석방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보고 (행 4:23-31)
사도들은 교회로 돌아와서 자기들이 당했던 일들을 보고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즉시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교회의 장래를 위하여, 이 심각한 문제들에 관하여 기도했습니다. 저들은 다윗의 글(시 2)을 인용하면서 저들이 당한 이런 일들이 이미 예언되었던 사실을 응하게 함이란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점은 사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자기들이 당면하는 고통과 핍박과 또는 죽음에서부터 건져달라고 호소하지 않는 점입니다. 저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려 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저들은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저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기도했는가를 살펴보십시다. 저들은 ①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 주옵소서 ②하나님께서 이적과 권능을 행하사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된 것을 확신케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과연 당시에 이적과 기사는 저들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바 증인이란 것을 보고 듣는 자들에게 확신시키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기도의 응답으로써 저들이 모였던 자리에 지진과 같은 진동을 일으키시고 성령을 충만케 해 주셨습니다. 이 결과로 인하여서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그 땅에서 강하고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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