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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교회의 순결성을 유지케 함
  연구과 (사도행전) - 7 과
교회는 오순절에 설립되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서 사도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는 그와 사도 요한이 당국에 잡히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당국은 저들에게 그 이상 예수에 대하여 전도하는 일을 금했습니다. 사도들의 양심은 당국의 요청에 순응할 수 없었습니다. 저들은 계속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저자 누가는 이 같은 외부적 박해의 위험에서부터 화제를 바꾸어 주님 교회의 내부적 사건에 우리들의 주의를 돌리게 해 줍니다.

① 예루살렘 교회의 연합과 자유 (행 4:32-37)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이 이상 더 교회가 하나로 연합 될 수는 없습니다. 5,000명이 넘는 이 회중은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혼란된 소동이나 무질서한 추태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조금 전에 그가 아버지 하나님께 가장 진지한 기도를 했었는데 여러분들은 그 기도를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추종자들이 많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까? 제자들이 당할 핍박을 모면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결코 이런 일을 위하여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하나로 연합될 것을 위해 기도하셨을 뿐입니다(요 17:20-21). 만일 제자들이 하나로 뭉쳐 있으면 핍박이 결코 저들을 당해 낼 수 없을 것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신성한 집단은 결코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이 같은 연합에 대하여서는 우리가 놀랄 정도로 저들이 완전히 이기주의적(利己主義的)인 입장을 떠나서 뭉쳐졌다는 사실을 다음 구절과 같은 실례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이 같은 모범 받을만한 행동의 동기를 우리는 관찰할 필요가 있는 줄 압니다. 여러 지방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여 들었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는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주로 전파했으며 이 말씀을 들은 모든 무리들이 기쁨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날에 제자의 수가 3,000이나 더했습니다(행 2:41). 저들이 개종한 이래 저들은 주님의 교훈을 사도들을 통해 더 배우기 위해 가능한 한 더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저들은 이같이 연장되어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는 생활에 대한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생활에 불편이나 고통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갖고 있는 전답이나 소유물들을 팔아서 필요한 일에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팔아진 물건의 돈들을 모두 사도들에게 가져 왔습니다.

인간들은 종종 높이 평가되고 있는 고상한 자료들을 선발하여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 하나의 실례로서,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이 구절(4:32-37)들을 인용하여 초대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자들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릇된 사상입니다. 그 이유로서 ① 저들이 소유물을 팔았다던가 유무상통(有無相通)했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었지 강제적이 아니었으며 ② 저들이 그 물건들을 똑같이 서로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저들의 필요에 따라 분배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물질을 바치는 일에서나 분배하는 일에 실수가 없었는데 -앞으로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저들 가운데 잘못이 있을 때 교정된 실례를 보아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보다 더 저들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모든 일들을 행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실에 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하튼 이 초대 예루살렘의 교회는 후대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들의 모범을 세웠습니다. 즉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는 하나님의 자녀 된 형제의 굶주림을 보고 방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밥 한 술이라도 굶주리는 형제들과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대의 안디옥 교회가 이 같은 모범을 따라 실천한 사실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행 11:27-30).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사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형제들을 구제하게 된 일의 결과를 누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본서의 저자는 교회 안에서의 자유에 대하여 바나바에 대한 실례를 기록했습니다(행 4:36,37). 아마도 바나바란 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가 후에 바울의 동반자로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행 13:2). 바나바라는 뜻은 '권위자'란 말입니다. 바나바란 인물은 하나님 앞에서 옳지 못하게 행하는 사람들을 바로 권고하여 인도하는 재능이 있음을 표하는 것이라고 추측됩니다(행 11:23). 그는 레위 지파에 속했으며 그의 집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구부로 섬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 (행 5:1-1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바나바가 땅을 소유했음과 같이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밭을 소유했었습니다. 저들은 바나바와 같이 저들의 땅을 팔아서 구제에 쓸 마음을 가졌습니다. 드디어 밭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값의 얼마를 숨기고 그 일부만 사도들에게 갖고 왔습니다. 아나니아가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을 때에 베드로는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이 같은 위선적 행동에 사단이 가담하여 행동했습니다. 사단이란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에(요 8:44) 이 사단이 아나니아로 하여금 거짓말하게 함을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할 바 없습니다. 그 다음에 베드로는 다시 "어찌하여 이런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아나니아는 사단의 세력을 억제할 힘이 있었으며 사단의 역사에 가담치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는 거짓에 동참했습니다.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즉 아나니아는 죽고 말았습니다(행 5:5). 젊은 사람들이 그 시체를 싸서 묘지에다 장사 지냈습니다. 어찌하여 삽비라가 자기 남편의 죽음에 대하여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있었는가는 약간 이상한 일입니다. 남편의 장례식에 아내가 참석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삽비라는 전혀 남편에 대한 사실을 모르고 그곳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사도 베드로가 삽비라의 심정도 알아보려고 남편에 대한 사실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아나니아가 죽은 지 세 시간 뒤에 삽비라가 왔습니다. 베드로는 삽비라에게 "네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고 물었습니다. "예 이뿐입니다" 라고 삽비라는 대답했습니다. 물론 삽비라는 거짓말 대신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사실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너희가 어찌하여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고 꾸짖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과연 주의 영이 자기들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것 같이 행동했습니다. 삽비라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남편과 같이 그도 장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저들을 죽게 함으로써 거짓된 행위를 미워하신다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생겨진 교회 정화(淨化)의 결과를 누가는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서술했습니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진리는 세상의 거짓됨을 교회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종종 오늘날의 교회는 어떤 죄악이 나타날 때 악평을 초래합니다. 왜 예루살렘 교회에 이런 진리를 교훈했는가? 상이한 점은 범죄자들을 취급하는 방법에 원인합니다. 좋지 않은 교인들의 잘못됨이 드러났지만 그 잘못됨을 뉘우치지도 않고 교회에 그냥 머물러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죄악된 사실을 묵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에 의하여 이적과 기사가 행해짐(행 5:12-16)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생긴 놀라운 일들이 있은 다음 사도들은 많은 이적을 행했습니다. 많은 수의 남녀 신도들이 주님의 교회에 더해졌습니다. 예루살렘 지역의 많은 병자들이 사도들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사도들의 명성은 숲 속의 불꽃 같이 번져 알려졌고 많은 병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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